[세월호 1년, 갈등을 넘어 치유로] 팽목항으로 향하는 버스 안은 침묵만 흘러… 유가족 등과 6시간 동행기

입력 2015-04-16 02:38 수정 2015-04-16 09:51
15일 전남 진도군 관매도 인근 세월호 침몰 해역을 찾은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들이 내 난간을 붙들고 서서 터져나오는 슬픔에 절규하고 있다. 침몰 해역 헌화식은 40분가량 이어졌다. 진도=김지훈 기자

“언제쯤 진도를 벗어날 수 있을까?”

세월호 참사 실종자 양승진(59) 교사의 부인 유백형(55)씨는 지난 14일 무거운 발걸음으로 버스에 올랐다. 버스 앞 디지털보드에는 ‘진도’라고 행선지가 적혀 있었다. 지난해 4월 16일 이후 매일 오전 9시면 경기도 안산 합동분향소에서 전남 진도 팽목항으로 가는 차편이 열린다. 유씨는 지난달 23일에도 이 버스를 탔다. 그날은 유씨 부부의 결혼기념일이었다.

“23일이 우리 결혼기념일이고, 그 다음날이 애들 아빠 생일이야. 그래서 갔지. 오늘은 이제 곧 1주기니까….” 유씨의 오른손엔 두꺼운 검은색 점퍼가 들려 있었다. “사고 현장에 갈 때 입으려고. 하늘도 아나봐 비가 오는 걸 보니. 지난해에도 그랬는데.” 유씨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내다봤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 사이로 버스가 내달렸다. 안산 합동분향소에서 팽목항까지는 약 410㎞. 5시간이 넘게 걸린다. 운전기사 김상인(60)씨는 팽목항에 네 번째 가는 길이었다. “보통 3∼4명이 버스에 타요. 오늘은 좀 많은 편이네요.” 이날 버스엔 기사 김씨를 포함해 11명이 탔다.

버스 안에 침묵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차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만 텅 빈 공간을 울렸다. 기사 김씨는 “내려가는 동안 아무도 얘기를 안 해요. 운전하면서 백미러로 힐끔 보는데 다들 창밖을 바라보거나 눈을 감고 있거나 해요. 저는 그저 불편하지 않게 운전에만 신경 쓰죠”라고 했다.

유씨는 차 안에서 쉽사리 잠들지 못했다. 휴대전화로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 아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그동안 세월호 영상이나 남편이 평소 하던 말들을 보내기도 했다. ‘성실하게 정직하게.’ 이날은 메시지에 이렇게 썼다.

침묵을 깬 건 ‘팽목항 왕언니’로 불리는 자원봉사자 신은혜(59·여)씨였다. 가방을 주섬주섬 뒤지더니 먹을 것을 꺼내 유씨에게 건넸다. 신씨는 참사 이후 3개월 넘게 팽목항을 지키며 유씨와 인연을 쌓았다. 팽목항에 컨테이너 숙소를 마련하자고 건의한 것도 신씨였다. 지난달 25일에도 팽목항을 찾아 3개월 동안 손수 만든 노란 드레스 304개를 방파제에 매달고 왔다. “도울 일이 있으면 뭐라도 할 텐데 지금은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1주기를 맞아 도움이 필요한 곳이 있을 것 같아 지인과 함께 내려가는 길입니다.”

자원봉사자 김진무씨는 7개월 만에 팽목항을 찾는다. 그는 세월호 참사 이후 100일 넘게 팽목항에 있었다고 한다. 이번엔 사촌동생과 함께였다. 김씨는 “추모하러 가는 거예요. 유가족들이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하기도 하고…”라고 말했다.

버스가 진도로 접어들었다. 맑은 하늘과 파란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바다 위를 지나는 배들이 보이자 유씨가 얼른 고개를 돌렸다. “유람선도 좋아했고 바다도 참 좋아했는데 이제 보기 싫어. 노란색만 보면 눈물이 나. 세월호 인양하고 남편 일 마무리되면 진도에 다시는 오지 않을 거야.”

안산·진도=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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