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년, 갈등을 넘어 치유로] 참사 후 우울감·무기력증… 안산 전체 세월호 그림자

입력 2015-04-16 02:29
세월호 참사에 경기도 안산은 ‘한 집 걸러 한 집’꼴로 피해를 입었다. 우울함이 온 도시를 휘감았다. 감정은 빠르게 전염됐다. 쏟아지는 세간의 관심과 웅성거림 속에서 안산 시민들은 자신도 모르는 새 우울, 무기력에 빠졌다. 고대안산병원 신철 교수 연구팀은 “지난 1년간 세월호 피해자와 직접적 관계가 없는 안산 주민들의 삶의 질도 크게 낮아졌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신 교수 연구팀은 2001년부터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가 주관하는 ‘한국인 유전체 역학조사사업’의 하나로 안산 등 경기도 주민의 만성질환과 노화, 정신분석 등을 추적 조사해 왔다. 조사는 2년마다 진행됐고, 세월호 참사 이후에는 세 차례 실시됐다. 조사 대상은 피해자가 몰려 있는 안산 고잔1동·와동·선부3동 주민 432명과 나머지 안산 지역주민 2084명 등 총 2999명이다. 이 가운데 세월호 희생자 가족은 없다. 조사 과정에서 편견이 개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세월호 관련 용어는 전혀 쓰지 않았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주요 3개 동은 물론이고 다른 지역 주민도 심한 우울감과 불면증, 스트레스 등을 호소하고 있다. 연구팀은 이들이 심각한 ‘감정 전염’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봤다. 정신과 용어로는 ‘감정 이입’이라고 한다. 고통 받는 타인에 스스로를 이입해 전염병이 퍼지듯 정신적 건강 상태가 전파되는 것을 뜻한다.

사고 이전 주요 3개 동 주민들의 우울증 지수는 1.34점이었지만 참사 직후 2.52점으로 올라간 뒤 점점 높아져 4개월 후에는 2.74점으로 집계됐다. 기타 안산 지역 주민의 우울증 지수도 참사 직후 2.32점에서 2.52점으로 계속 상승 추세다. 이 점수는 같은 기간 안산 밖 경기도 지역에서도 1.93점에서 2.02점으로 올랐다. 신 교수는 “도시 전체에 드리워진 우울의 그림자가 쉽게 걷히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참사 이후 불면증을 호소하는 사람도 크게 늘었고, 스트레스 지수 그래프도 꾸준히 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정신적 불안 상태가 지속되면 삶의 질도 떨어진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시간이 흘러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트라우마는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다가 언제든 다시 나타난다.

참사 이전 주요 3개 동 주민들의 신체적 삶의 질은 47.2점이었지만 참사 직후 46.6점, 넉 달 뒤 46.1점으로 낮아졌다. 신 교수는 15일 “문제의 근본 원인이 해결되지 않으니 정신적 고통이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것”이라며 “정서적 불안은 도시 전체의 생산성과 활기를 떨어뜨리고 개개인의 신체적 건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안산=정부경 기자 vic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