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4월 15일, 가방을 메고 현관을 나서다가 돌아서서 엄마를 꼭 안아주었지. 평소처럼 장난스럽게 하트를 날리며 엉덩이를 씰룩하는 게 아니라, 너보다 훨씬 작아진 엄마 어깨를 감싸고 꼬옥, 안아주었어. 아, 그마저도 어떤 의미였을까? 엄마는 이제 모든 기억 속에서 너의 의미를 찾게 되었다.’(단원고 2학년 5반 오준영군 약전(略傳) ‘엄마의 편지: 안산은 아침이 아프다’ 중에서)
‘기억’에 매달리는 작가들이 있다. 기억이야말로 극복이고 반성이라고 믿는다. 지난 14일 경기도 일산 자택에서 소설가 유시춘(65)씨를 만났다. “밀란 쿤데라가 말했어요. ‘불합리하고 비민주적인 권력에 대항하는 모든 기억은 언젠가 잊혀진다. 민중이 할 수 있는 일은 기억투쟁이다’라고요. 지난날을 잊지 않고 그 미숙함을 극복하기 위한 기억투쟁의 원전(原典)을 집필하는 거죠.” 기억이란 단어에 힘을 싣는 목소리에는 눈물이 배었다.
◇단원고 희생자 ‘전기(傳記)’ 펴낸다=유씨는 ‘4·16참사 단원고 희생자 약전 발간사업’을 경기도교육청에 제안했고 상임위원장으로 그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단원고 희생 학생 250명과 교사 12명의 간략한 전기를 펴내는 일이다. 학생 한 명당 40장, 교사 한 명당 80장 분량의 약전·추모사를 모아 12권짜리 책 ‘짧은 그리고 영원한’(가제)으로 엮을 예정이다.
고등학교에서 14년간 국어를 가르친 유씨에게 세월호 참사는 남의 일이 아니었다. ‘단원고 아이들을 교육적으로 가장 깊이, 오래 기리는 일’이라며 약전 사업을 제안했고 교육청이 선뜻 응했다. 등단작가 60여명이 모여 이달 초 위촉식도 가졌다. 아이들과 정서적 거리가 가까운 동화작가, 청소년 소설가, 30대 안팎의 젊은 작가들을 주축으로 했다. 베스트셀러 소설가, 시인, 시나리오 작가도 힘을 보탰다. 40여명을 더 모을 생각이다. 유씨는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작가가 그 아이를 표현할 수 있는 최적의 방식으로 하나의 문학작품이 되도록 완성하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전기 작업은 지난하다. 유씨는 “한 아이가 태어나서 2014년 4월 16일 수학여행에 나서기까지 17∼18년, 전기를 쓰기에는 너무 짧은 이 생애를 복원하는 일이 쉽지 않다”고 했다. 가족이나 이웃, 친구를 심층 인터뷰해야 한다. 문제는 이 친구들이 생존 학생이라는 점이다.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망각은 고통스럽다=유가족들은 ‘망각’이 가장 두렵고 고통스럽다. 여기에 맞서 기억하려는 노력은 불편하다. 이 접점에서 ‘기억투쟁’이 시작된다. 기억을 지지하려면 ‘기록’의 힘을 빌려야 한다. 유씨는 “특별법, 진실규명, 관련자 처벌 못지않게 그 여린 꿈나무들이 어떤 시대의 고통을 견디며 무슨 꿈과 희망을 키우다 갑작스레 떠나갔는지에 대한 기록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약전은 전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서서히 죽어간 이 아이들의 생애가 담긴 프레스코화이자 우리가 잃은 것의 가치를 후세에 남기는 역사”라고 덧붙였다.
위원회는 약전 사업을 알리기 위해 80쪽 견본을 만들어 교육청, 유가족, 작가들에게 배포했다. 2학년 2반 양온유, 4반 김동혁, 5반 오준영, 8반 이재욱, 10반 이경주 학생의 약전과 사업 소개가 담겼다. 위원회는 내년 2월 단원고 2학년 명예졸업식 때 완성된 약전을 헌정할 계획이다. 올 9월 말까지 원고를 마감하고 유가족 최종 승인을 거쳐 12월 말 출간된다.
첫걸음을 막 뗀 유씨는 결의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것은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알베르 카뮈가 말했어요. 기록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이 오랫동안 기억하도록 돕는 건 글줄이나 쓰는 사람들의 의무이자 아이들에 대한 속죄의 길입니다.”
고양=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
[세월호 1년, 갈등을 넘어 치유로] 희생자들 삶 문학작품으로 복원한다
입력 2015-04-16 02: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