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은 말로 먹고사는 직업이다. 시도 때도 없이 집회에 나가 연설이나 강연을 하고, 기자회견을 해야 한다. 정치적 반대자와 숨 막히는 담판도 벌여야 한다. 그들에겐 논리정연한 말 솜씨도 중요하지만 위트나 유머로 상대방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게 더 중요하다.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과 함께 목욕을 한 뒤 회담하던 중 타월이 흘려내려 알몸이 됐다. 이때 그는 “우리 영국은 대통령 각하와 미국에 아무것도 숨기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에이브러햄 링컨 미 대통령이 손수 구두 닦는 모습을 발견한 사람들이 “왜 구두를 직접 닦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링컨은 “아니 내가 명색이 미국 대통령인데 남의 구두까지 닦아줘야 하느냐”고 말했단다. 참으로 먼 나라 얘기다.
우리 정치권엔 위트나 유머는 고사하고 듣기 거북한 언사가 줄을 잇는다. “박근혜 의원은 칠푼이”(김영삼 전 대통령, 김문수 경기지사와 대화하던 중) “거울 보고 분칠이나 하는 후보는 안 된다”(홍준표 의원, 한나라당 대표 경선 TV토론에서 나경원 의원 겨냥) “춘향전은 변사또가 춘향이 따먹는 얘기”(김문수 경기지사, 조찬강연) “박근혜 의원 그년 서슬이 퍼래서”(이종걸 민주통합당 최고위원, 트위터 메모). 박근혜 대통령도 국무회의에서 규제개혁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단두대를 거론해 표현이 거칠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완구 국무총리가 14일 국회에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3000만원을 받았다는 의혹을 해명하며 “나에게도 명예가 있다. 6하 원칙에 따라 만약 돈 받았다는 증거가 나오면 총리직 정도가 아니라 제 목숨을 내놓겠다”고 말해 회의장을 술렁이게 했다.
결백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겠지만 국민들에겐 협박으로 들린다. 검찰 수사를 받던 중 스스로 목숨을 던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연상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총리로서 적절치 못한 막말이다.
성기철 논설위원 kcsung@kmib.co.kr
[한마당-성기철] 목숨 내놓겠다는 총리
입력 2015-04-16 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