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봄바람에 벚꽃이 흩날리고 있다. 화사한 유채꽃은 노란색 물감을 풀어놓고 있다. 2014년 4월 16일도 그랬다. 여객선 세월호에 몸을 실은 476명은 넘실대는 바다를 바라보며 모두 부푼 마음이었다. 유채꽃 핀 제주로 향하는 길은 그렇게 희망이 가득 찼다. 그러나 누가 알았겠나. 맹골수도에 부실·무능이 출렁일 줄이야. 복원력을 상실한 대한민국이 만들어낸 참사에 무고한 아이들은 하나둘씩 바다에 가라앉고 말았다. 온 국민의 간절한 기원에도 295명이 주검으로 돌아왔고, 9명은 아직도 가족의 품에 안기지 못하고 있다.
그 후 1년, 시간으로 따지면 정확히 8760시간이 흘렀다. 통한의 침몰 지점인 전남 진도군 병풍도 인근 해역에는 ‘세월’이라고 적힌 노란 부표만이 그날의 참사를 말해주듯 파도에 흔들리고 있다. 지난 1년간 대한민국을 휩쓸었던 격랑처럼 말이다. 참사 이후 우리 사회는 온갖 감정이 뒤엉켜 요동쳤고 나아갈 방향조차 잡지 못한 채 흔들거렸다. 해저에 처박혀 있는 세월호를 빼닮았다고나 할까. 진도 팽목항에는 실종자 가족들의 울부짖음이 여전히 메아리치고 있다. 안산에서도 고통의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살아 남은 자의 고통도 끝날 줄 모른다.
이들만이 아니다. 참사는 대한민국에 엄청난 트라우마를 남겼다. 변화를 이야기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오히려 우리 사회는 여러 조각으로 분열됐다. 오랜 정쟁 끝에 ‘세월호 특별법’이 간신히 통과됐지만 특별조사위원회는 시행령안에 부닥쳐 활동을 시작조차 못하고 있다. ‘국가 개조’라는 말까지 나오며 재난구조 시스템에 대한 대수술이 이뤄졌지만 대형 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정윤회 문건 파동’에 이어 ‘성완종 리스트’가 정치권을 강타하며 나라꼴은 말이 아니다.
혼란의 블랙홀 중심에서 휘청거리는 ‘대한민국호’를 이대로 놔둬선 안 된다. 희망과 미래를 인양해 바로 세워야 한다. 그리고 분열과 갈등을 넘어 치유로 나가야 한다.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 카이 에릭슨은 “집단의 회복 없이 개인의 회복은 어렵다”고 했다. 에릭슨의 말처럼 노르웨이와 네덜란드는 각각 2011년 테러리스트의 총기 난사와 1953년 북해 대홍수 재앙이라는 국가 재난을 집단적 각성으로 극복했다. 우리의 상처도 공동체 회복과 신뢰 체계 구축으로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건강한 지역공동체의 참 일꾼으로 함께할 수 있도록 어깨를 걸고 등을 토닥여줄 시간이다. 깊이 스며든 절망을 미래 동력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방법도 찾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 등 지도자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막중하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의 참회 어린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청와대에서 수사(修辭)만 남발할 것이 아니라 국민을 진정으로 보듬을 수 있는 현장 스킨십과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 특별조사위원회가 제대로 출범할 수 있도록 철저한 진상규명을 천명하고 완벽한 재발방지 시스템도 만들길 바란다. 유가족은 물론 국민들을 다독여 통합의 길로 이끌어야 한다. 세월호 1주기 추모식도 ‘정부 따로 유가족 따로’일 수 없다.
지난해 4월 국민은 한마음이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고 싶어 했고, 같이 아파하며 눈물도 흘렸다. 4·16 이전과 이후의 대한민국은 확연히 달라야 한다는 데 공감했고, 그러기 위해 세월호의 교훈을 잊지 말자고 했다. 1년이 지난 지금 다시 우리는 한마음이 되기를 희망한다. 그 ‘4월의 마음’처럼 서로를 안아주어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호’가 깊은 내상을 딛고 치유와 통합으로 전진할 수 있다. 계층·이념·세대·지역 갈등으로 갈기갈기 찢긴 한국이 아닌 하나의 한국, 하나의 한국인을 꿈꿔야 한다. 이제 갈등의 나무를 베어내고 희망의 나무를 심자. 다시 꽃피는 봄날, 활짝 웃음꽃을 피울 수 있을 때까지.
[사설] 세월호 1주년, 갈등을 베어내고 희망을 심자
입력 2015-04-16 0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