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해외자원개발 비리 수사 벽두부터 ‘성완종 리스트’라는 복병을 만났다. 첫 번째 타격 대상이었던 경남기업 수사에서 성 전 회장의 자살과 전화녹음, 메모 등의 돌발 사태로 당초 의도했던 수사는 헤어 나오기 힘든 늪에 발목을 담근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검찰이 특별수사팀을 가동시키기에 이르렀다. 불행하게도 그 리스트에는 현직 국무총리와 전·현직 대통령비서실장, 현직 지방자치단체장과 국회의원 등이 오롯이 포함돼 있다. 대부분 이른바 친박계 핵심인사들이다.
사실로 밝혀질 경우 정권의 도덕성이 심대한 타격을 입을 것이다. 총리의 국정수행도 발목을 잡힐 가능성이 커 보인다. 정권 출범 3년차를 맞아 부패척결과 각종 개혁과제를 눈앞에 둔 정부로서는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그 추동력을 잃어버릴 수 있으리라. 따라서 특별수사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관심의 초점은 검찰 수사가 과연 현재 살아있는 정치권력과 맞서 싸워 이길 만한 내공을 갖고 있느냐에 있다. 검찰 수사가 2007년 대선후보 경선이나 2012년 대선자금 의혹을 겨냥할 때 청와대가 어떤 형식으로든 수사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선입견을 떨쳐 버리기 어려운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유사한 정치적 사건의 수사에서 봐왔던 정치적 편향성을 띤 검찰 행태를 국민들은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라도 그런 사태가 재발한다면 또다시 검찰 불신과 특검 등 국력의 낭비가 뒤따를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문무일 특별수사팀의 성패는 이처럼 국가적 중대사다. 특별수사팀이 국민의 신뢰를 얻을 만한 결과를 내놓으려면 먼저 법치 우위적 신념을 바탕으로 수사에 성역을 두지 말아야 한다. 그러려면 법과 원칙에 따른 엄정한 수사를 촉구한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가 수사팀이 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최대한 자제심을 발휘해야 한다. 그 길이 모두를 살리는 길이다. 나아가 검찰 수뇌부도 특별수사팀에 전폭적인 힘을 실어주고, 외압의 방패막이를 자임하고 나서서 결과를 묵묵히 지켜보기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가뜩이나 어려운 수사가 국민의 기대치를 충족시키기 어려울 것이다.
특별수사팀의 독립적인 시스템이 발휘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다는 전제 아래 다음 문제는 특별수사팀 자체의 의지와 역량에 달려 있다. 살아있는 권력도 법의 지배 아래 있다. 이것이 민주적 법치국가의 범접할 수 없는 원리라는 점은 검찰 스스로 잘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이 사건을 다룸에 있어서 법치가 정치 위에 있으며, 법은 권력의 상층부에도 추상같이 임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바란다. 앞뒤 좌우를 재지 말고 실체적 진실 하나를 더 얻기 위해 옹골차게 진실에 접근해 가야 할 것이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연한 의지를 가지고 진실에 다가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조급하게 서두르다가 또 하나 중요한 절차적 정의를 놓쳐서는 안 된다. 엄정한 수사일수록 피의자의 인격의 존중과 당사자의 마음을 헤아리는 친절한 예의를 잊어서는 안 된다. 진실을 눈앞에 두고서도 이런 기본적인 일에 주도면밀하지 못해 사건을 송두리째 물거품으로 돌리는 우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진실에 대한 최종 판단은 사법부 몫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사과정에서 적정 절차와 인권보장책에 대한 세심한 주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끝으로 특별수사팀의 수고에 대한 최상위의 평가자는 국민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 국민 각자는 소박할지라도 국가적 권력 작용에 대한 최종적 평가를 내리고 그 판단은 항시 현명하기 때문이다. 비록 밀행성을 띤 수사라도 국민과의 소통은 그래서 중요하다.
김일수 고려대 명예교수
[시사풍향계-김일수] 문무일 특별수사팀이 가야 할 길
입력 2015-04-16 0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