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했던 시절 만들어졌던 ‘외국 민간원조단체에 관한 법’이 52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원조를 받던 시대’가 완전히 종료됐음을 의미한다.
보건복지부는 외국 민간원조단체에 관한 법률 폐지안이 14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복지부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지위가 국제사회에 원조를 할 만큼 격상됐고 국내에서 사회복지사업을 하는 외국 민간단체에 대한 최근 지원 실적이 없어 법의 실효성이 크지 않다”고 말했다.
이 법은 1963년 국내에서 각종 원조·복지사업을 하는 외국 민간단체를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가장 큰 혜택은 해외에서 들여온 식량과 의료기기, 의약품, 연필, 공책 등에 대해 관세를 매기지 않는 것이었다. 원조 물품의 국내 운송비 일부 혹은 전부를 국가가 지원하는 규정도 있었다. 복지부 관계자는 “쌀 한 톨도 절실했던 때 아니냐”면서 “규제가 아닌 지원을 위한 법이었다”고 말했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해외에서 들어오는 원조 물품도 점차 줄었다. 74년에는 원조 물품의 종류를 의료용과 교육용에 한정하도록 법 시행령이 바뀌었다. 복지부에 따르면 해외 원조 실적은 89년 3200만 달러어치로 기록돼 있고 95년 ‘보건사회백서’에서는 관련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 90년대 초반 원조가 끊긴 것으로 보인다. 원조 물품에 관한 조정·배분 업무를 맡았던 ‘주한외국 민간원조단체 연합회(KAVA)’는 94년 해체됐다.
1960∼70년대에는 이 법을 악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세금 혜택이 크다 보니 일제 경운기 등을 원조 물자인 것처럼 속여 국내로 들여오려다 적발된 사례도 있다.
60년대 100곳 가까이 있던 해외 민간원조업체는 현재 38곳만 정부에 등록돼 있다. 이들의 성격도 크게 바뀌어 직접 원조를 하는 곳은 없고 대부분 선교나 다른 복지사업을 하고 있다. 성베네딕트수도원 홀트아동복지회 등이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
‘원조 받는 한국’ 역사 속으로… 외국 민간원조단체 지원법 52년 만에 폐지
입력 2015-04-15 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