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년, 갈등을 넘어 치유로] ‘별’이 된 아이들이 받은 위로, 사회에 돌려줍니다

입력 2015-04-15 02:28
세월호 희생자인 경기도 안산 단원고 2학년 이준우 이재욱 최성호 김제훈 김건우군(왼쪽부터 시계반대방향)이 생전에 준우네 집에서 촬영한 동영상의 정지 화면(위쪽 사진). 촬영 날짜를 알 수 없는 이 영상은 참사 후 아이들의 컴퓨터에서 발견됐다. 부모들은 이 다섯 아이들 이름으로 후원을 시작했다. 지난달 27일 성호네 집에서 모인 어머니들이 손수 꽃무늬를 수놓아 만든 배지를 탁자 위에 가지런히 놓아뒀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제공

아이의 이름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게 싫었다. 한 달에 한 번씩 소식지가 아이 이름으로 날아온다면 영원히 함께한다는 느낌이 들 것 같았다. 세월호 참사로 안산 단원고에 다니던 외아들 최성호(당시 17세)군을 잃은 엄소영(40·여)씨는 이런 마음에 같은 처지의 부모들에게 어려운 아이들을 돕기 위한 정기 후원을 제안했다. 성호와 함께 ‘절친 5인방’이었던 희생 학생들의 부모도 흔쾌히 동의했다.

2011년부터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 후원해온 엄씨는 지난 1월 단원고 2학년 희생자 이준우 김건우 이재욱 김제훈군의 부모를 만나 정기 후원 얘기를 꺼냈다. 다들 “아이들을 대신해 좋은 일 하며 살자”고 뜻을 모았다. 아이들이 함께 만들어 학교에 제출한 ‘자살예방 캠페인’ 동영상을 본 게 직접적인 계기였다. 이들을 ‘5인방’이라 부르며 서로 위로하던 부모들이 자녀들의 이름으로 후원을 하기로 나서게 된 것이다.

“모든 서류에서 아들 이름이 없어졌어요. 그 이름을 살리고 싶어서, 그 이름이 불려졌으면 하는 마음에 아들 이름으로 후원을 시작했어요.” 엄씨는 14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후원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엄씨는 “우리가 아이들이라면 어떻게 살았을까 고민하다 작은 것부터 좋은 일을 하자고 의기투합했다”고 말했다. 준우군의 아버지 이수하씨도 “사고 이후 국민들로부터 많은 위로와 관심을 받았다. 사회에 우리가 돌려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며 “평소 엄씨가 하던 후원에 우리가 뜻을 모아 동참키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부모 5인방’은 한 달에 한 번 모임을 갖는다. 그러나 수시로 서로를 찾다보니 정기 모임은 별 의미가 없어졌다. 엄씨는 “불현듯 보고 싶어 전화한 뒤 ‘누구야, 나 어디 있어’라고 말하면 한두 명씩 오다가 결국 서로 다 모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아이들을 대신해 부모들이 친구가 된 셈이다.

5인방 외에도 정기 후원에 나선 세월호 유가족이 또 있다. 같은 반 친구에게 구명조끼를 벗어주고 다른 친구들을 구하러 배 안으로 뛰어들었던 정차웅(17)군의 부모는 지난 2월부터 차웅이 이름으로 이 재단에 후원을 시작했다. “‘만약 내 가족 중 누군가가 세월호 참사를 겪었다면’이란 고민을 우리 모두가 하게 된다면 우리 사회는 분명 좋은 모습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재단 관계자가 전한 유가족들의 말이다. 아이들은 갑작스럽게 떠났지만 아이들의 이름은 이렇게 따뜻한 사랑의 향기를 풍기며 세상에 남게 됐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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