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질문을 떠올렸을 법하다. 경기도 안산 단원고에 세월호에서 살아 돌아온 아이들 74명이 다니고 있다. 생존학생 75명 중 1명은 학교를 떠났다.
이 물음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 있다. 아이들이 아픔을 딛고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 너무 깊은 상처를 받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 그리고 막연한 호기심. 아이들은 걱정 어린 물음 뒤에 숨겨진 호기심을 경계한다. 그래서 낯선 이들과 ‘그날’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렇다고 이 아이들의 상처를 모른 체할 수는 없다. 지난 13일 단원고 스쿨닥터 김은지(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사진)씨를 ‘마음건강센터’에서 만났다.
◇‘생존학생들’로 묶지 말아주세요=그곳에는 초등학생들이 보내온 귀여운 그림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전남 진도 팽목항의 등대 사진도 있었다. 화분 몇 개가 놓여 있는 밝고 따뜻하고 편안한 분위기였다. 단원고 5층 도서관은 이런 모습의 ‘마음건강센터’로 운영되고 있다.
김씨는 지난해 4월 16일 전국의 소아청소년정신과 의사들에게 보내진 “모든 걸 팽개치고 달려오라”는 메일을 받고 심리지원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지난해 7월부터 단원고 학생과 학부모, 교사의 상담을 도맡고 있다.
살아 돌아온 아이들의 지난 1년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75명 아이들이 각각 다 다른 아이들이에요. ‘생존자 아이들’이라고 묶어서 말할 수 없는 거죠.” 김씨는 ‘생존학생들’이라고 뭉뚱그려 표현하는 것을 경계했다. “잘되지 않지만 나름대로 미래 계획을 세우려고 노력하고, 잘되지 않지만 공부에 집중하려 노력하고, 잘되지 않지만 새로운 친구를 사귀려고 노력하는 아이들이 있죠. 여전히 많이 힘든 아이들이 있고요. 그때 이후로 멈춰 있는 아이들도 있어요. 무력감과 분노가 잘 해결이 안 되는 아이들도 있고요.”
‘생존학생들’이라는 표현은 ‘별난 아이들’이라는 타이틀이 되기도 한다. ‘집단’으로 묶으면 함부로 대하기 쉽다. 살아 돌아온 것을 대단한 혜택이라도 받은 것처럼 싸잡아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이들은 사회에 나가서도 생존학생들이라는 이유로 공격당하거나 특별한 취급을 받을까봐 벌써 걱정하고 있다.
김씨는 아이들이 지나치게 씩씩해 보인다고 걱정했다. 아이들의 ‘다 그런 거죠’ ‘뭐 어떻게 해요. 견뎌야지’ 하는 말들이 안쓰럽다고 했다.
◇“잊으라는 게 아니야, 잊을 수도 없는 일이지”=전문가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뒤 슬픔·무력감·분노가 잦아들고, 새로운 상황에 점차 적응해가는 것을 적절한 애도 반응이라고 본다. 그래야 일상을 회복할 수 있다. 하지만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를 겪으면 애도에 문제가 생긴다. 슬픔이 너무 커서 일상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일상생활에 적응이 안 돼서 슬픔과 아픔이 해결되지 않는 식이다. 단원고 아이들에게도 이런 모습이 나타난다.
“‘잊고 싶지도 않고 잊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서 괜찮다는 아이들이 있어요. 잊어야 한다는 게 아니고, 잊을 수도 없는 일이에요. 그렇게 얘기해줘요. 네 친구들은 네 마음에 영원히 있을 거라고요. 합리적인 이야기니까 받아들여요.”
아이들은 1주기를 앞두고 특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김씨는 아이들에게 ‘댓글’을 보지 말라고 하지만 아마도 세월호 관련 댓글을 가장 많이 보는 게 이 아이들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지나가듯 ‘언론 인터뷰 할 수 있겠냐’고 물으면 아이들 대답은 한결같았다고 한다.
“아뇨. 악플 달리잖아요.”
아이들은 여전히 상처를 받고 있다. 그래도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고 있다. 김씨는 섬세한 배려를 얘기했다. “지난 1년간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던 아이들이에요. 이 학교에서 보낼 남은 한 해는 더 많이 극복할 수 있도록 어른들 도움이 필요합니다. 존중하고 배려하는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좋겠습니다.”
안산=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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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4-15 0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