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글속 세상] 노숙인 이름표 떼기… ‘빅이슈’로 희망을 찾는다

입력 2015-04-15 02:33
서울 당산동 빅이슈코리아 사무실에서 빅이슈 코디네이터가 ‘빅판’(빅이슈 판매원) 안장수씨에게 이발을 해주고 있다. 안씨는 이발을 한 뒤 깔끔해진 모습을 보며 새로운 시작과 희망을 다짐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병주 기자
서울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 6번 출구를 담당하는 안장수씨가 환한 표정으로 빅이슈를 들고 있다. 안씨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곳에서 노숙생활을 했다. 그러나 빅이슈코리아 코디의 설득으로 판매원 일을 시작한 뒤 지금은 노숙인 합창단인 ‘빅하모니’ 등 다양한 사회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이병주 기자
안장수씨가 노숙인이 보는 앞에서 빅이슈 잡지를 판매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안장수씨가 기록한 그동안 팔았던 잡지 목록. 이병주 기자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일하다 오른손 손가락이 절단된 뒤 삶의 희망을 잃고 노숙생활을 했던 김성열씨(52)가 웃는 얼굴로 잡지를 포장하고 있다. 이병주 기자
1년6개월 동안 빅이슈 판매원으로 번 돈과 서울시의 지원으로 서울 봉천동에 임대주택을 얻은 이성용씨(오른쪽 세 번째)가 지난달 30일 동료 빅판들과 함께 조촐한 집들이를 하고 있다. 임대주택 집들이는 빅이슈코리아의 최대 행사다. 빅판 동료들과 빅이슈코리아 직원들이 모여 축하와 격려를 하는 자리다. 이병주 기자
“안녕하십니까. 사랑과 희망의 잡지 ‘빅이슈’입니다.”

지난달 27일 서울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 6번 출구 앞에서 안장수(44)씨가 빅이슈 잡지를 들고 힘차게 외치고 있다. 자신이 노숙하던 그 자리, 자신과 같은 처지인 노숙인들 앞이다.

청소년 시절을 불우하게 보낸 안씨는 어른이 되었어도 끈기가 없어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끝내 자리를 잡지 못하고 몇 년 전부터 이곳에서 노숙을 해왔다. 그는 1년 전 빅이슈코리아 코디네이터의 설득으로 빅이슈를 팔고 있다. 안씨의 1차 목표는 임대아파트를 얻는 일이고 이후에는 환경미화원 직업을 갖고 싶어 한다.

빅이슈는 재능기부로 세계 10여국에서 발간되고 있다. 빅이슈코리아는 이 잡지를 노숙인들이 직접 팔게 하면서 자활을 돕는 사회적기업이다. ‘빅판’이라고 불리는 판매원들이 잡지를 2500원에 사서 5000원에 판매해 수익을 올리면 임대주택까지 지원해주는 사업을 하고 있다. 현재 66명의 ‘빅판’이 서울과 경기 지역 60여개 지하철역 출입구에서 빨간 조끼를 입고 잡지를 판다.

종각역 11번 출구를 담당하는 이성용(37)씨는 “염전에서 일하다 월급을 받지 못하고 서울로 올라와 노숙생활을 하던 중 빅이슈 판매를 시작하면서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년6개월간 일해 모은 돈으로 임대주택을 얻게 됐고, 이제 두 번째 목표인 자동차정비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10년 7월 창간 때부터 현재까지 ‘빅판’으로 일했거나 일하고 있는 판매원은 약 400명이다. 이 중 33명이 임대주택을 얻었고 15명은 취업에 성공했다. 실패와 좌절 끝에 거리로 내몰렸던 이들이 빅이슈를 통해 노숙인이란 이름표를 가슴에 달고 노동이라는 디딤돌 위에 당당히 일어서서 생의 두 번째 걸음마를 떼며 새로운 희망을 찾은 것이다.

반면 빅이슈 사무실을 찾는 노숙인 가운데 며칠을 버티지 못하고 돌아가는 이들이 더 많다. 오랜 기간 좌절과 절망 속에서 자신을 놓아버렸던 홈리스들이 추위, 더위 속에 뭇사람들의 시선을 견디며 매일 대여섯 시간씩 거리에 서 있기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빅이슈코리아 이선미 대외협력팀장은 “전국의 노숙인들이 자활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전국 판매망을 구축하지 못해 아쉽다”며 “하지만 지방에 계신 독자들은 홈페이지를 통해 정기 구독을 신청하면 한 달에 두 번 빅이슈를 만나볼 수 있다”며 많은 관심을 당부했다.

사진·글=이병주 기자 ds5ec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