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철북’의 작가 귄터 그라스 타계

입력 2015-04-14 03:00
2014년 11월 독일 뮌헨에서 열린 자신의 전시회 ‘개들의 시절’에서 연설하는 귄터 그라스. 연합뉴스

소설 ‘양철북’으로 유명한 독일의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귄터 그라스가 세상을 떠났다. 향년 87세. 그라스의 출판사는 13일(현지시간) 그가 거주지인 독일 뤼벡시의 한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사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1927년 지금은 폴란드 그단스크로 불리는 단치히에서 태어난 그라스는 2차대전 종료와 함께 독일로 넘어왔고, 1959년 장편 소설 ‘양철북’을 출간해 단숨에 독일 전후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부상했다.

‘양철북’은 1920년대에서 1950년대까지 독일의 일그러진 역사를 주인공인 난쟁이 오스카 마체라트의 시점으로 그린 자서전적 작품. 비정상적인 난쟁이의 눈에 비친 정상인들의 세계가 더욱 비정상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면서 전쟁과 전후시대 독일의 현실을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그라스는 ‘개들의 시절’(1963), ‘국부마취’(1969), ‘넙치’(1977) 등 여러 작품을 발표하며 독일과 유럽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를 굳혔고, 1999년 전후 독일 작가로는 처음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그라스는 2002년 중앙대 한독문화연구소의 초청으로 방한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동독이 서독에 일방적으로 흡수되는 방식으로 이뤄진 통일에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동독과 서독 국민들의 심리적 장벽과 경제적 차이 때문에 사회 통합이 느려졌다는 점을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통일 과정에서 국가연합체제라는 과도기를 거쳤어야 했다는 것이다. 그라스는 통일을 최대 과제로 둔 한국에 많은 사람이 받을지 모르는 상처를 최소화하고, 상대적 약자를 최대한 고려하는 등 물리적 통일이 아닌 화학적 통일을 해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라스의 인생에서 가장 논란이 됐던 일은 2006년 여름 회고록 ‘양파껍질을 벗기며’를 통해 2차 세계대전 당시 17세로 나치 친위대(SS)에서 복무한 사실을 고백한 것이다. ‘독일의 양심’으로 불려온 작가가 62년이나 지난 시점에 소년 시절의 나치 행적을 밝힌 것을 두고 여러 비판이 제기됐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