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리스트’ 파문] 안 본 척, 모르는 척… 몸사린 경찰

입력 2015-04-14 02:36
경찰이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시신을 발견한 당일 ‘금품 메모’ 내용을 확인하고도 쉬쉬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완구 국무총리와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 등 여권 실세의 실명이 등장하자 몸을 사린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13일 강신명 경찰청장 기자간담회에 배석한 정용선 경찰청 수사국장은 금품 메모에 관해 “9일 밤 10∼11시쯤 검찰에 넘겨주면서 내용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기자들이 메모 발견 경위, 내용 확인 여부 등을 추궁하자 뒤늦게 말을 바꾼 것이다.

정 국장은 메모 내용이 알려진 지난 10일 낮 “(성 전 회장 시신에서) 종이가 발견되긴 했는데 검찰이 바로 가져가 내용은 못 봤다. 현장 경찰이 대충 봤을지는 몰라도 보고받은 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날 간담회에서는 자신이 이미 9일 밤 메모 내용을 확인한 사실을 인정했다. 다만 강 청장에게는 보고하지 않았다고 했다.

경찰은 숨진 성 전 회장을 발견한 지난 9일 저녁 기자회견을 열었지만 메모가 발견된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었다. 당시 서울지방경찰청 안동현 과학수사대장은 “(성 전 회장) 신체 외부에 있는 유류품만 수거했다”며 흰색 모자와 안경, 폴더폰만 언급했다.

메모의 존재는 다음날 오전 검찰 발표로 알려졌다. 일부 언론도 앞서 메모 발견 사실을 파악한 상태였다. 안찬수 종로경찰서 형사과장은 “(숨긴 게 아니라) 말을 하지 않은 것”이라며 “안경, 모자‘만’이라고 하지 않았고 ‘등’이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없다고는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내용에 대해선 “확인해줄 수 없고 확인해주지 않을 예정”이라며 입을 닫았다.

경찰은 메모 발견 사실과 내용을 숨긴 이유에 대해 ‘중요한 내용이 아니라고 봤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이 때문에 수사기관인 경찰이 실명과 금액이 나란히 적힌 메모의 의미를 스스로 축소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 청장은 간담회에서 은폐 의혹이 거론되자 얼굴을 붉히는 등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의도적으로 은폐한 게 아니라 검찰이 수사하는 사건의 중요 단서라서 말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창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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