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16일로 1년이 된다. 지난해 11월 11일 수색 종료 때까지 295명이 주검으로 돌아왔고, 단원고 학생과 교사, 승객 등 9명은 아직도 가족의 품에 안기지 못하고 있다.
사고 직후 이준석 선장 등 승무원, 청해진해운 실소유주인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 비리, 해운업계 구조적 비리 등에 대한 수사가 전방위로 진행돼 399명이 입건되고 이 가운데 154명이 구속됐다.
참사 발생 205일 만인 지난해 11월 7일 ‘세월호 특별법’ ‘정부조직법’ ‘유병언법’(범죄수익은닉 규제 및 처벌법) 등 이른바 ‘세월호 3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리고 한 달여가 지난 12월 29일 국회 추천 몫 10명이 확정되면서 총 17명의 특별조사위원 구성이 완료됐다.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가 본격적으로 닻을 올린 것이다.
특조위는 구성을 마친 날로부터 1년 이내에 활동을 완료하되, 위원회 의결로 1회에 한해 6개월 이내에서 활동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진상규명과 안전 대한민국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띠고 있는 특조위는 여야 추천 각 5명, 대법원장 및 대한변호사협회장 지명 각 2명, 희생자가족대책협의회에서 선출한 3명 등 모두 17명으로 시작됐다.
위원장은 희생자가족대책협의회가 추천한 이석태(62) 변호사가 맡고 있다. 특조위는 지난달 5일 이완구 총리로부터 정식 임명장을 받고 같은 달 26일 인천 제1부두에 정박 중인 세월호의 쌍둥이선 오하마나호를 첫 현장 조사하는 것으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가는 듯했다.
하지만 다음날 암초에 부딪혔다. 해양수산부가 특조위의 정원을 90명으로 축소하고 공무원을 핵심 요직에 앉히는 시행령안을 입법예고했기 때문이다.
특조위 운영을 놓고 정부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이 위원장을 지난 8일 서초구 서울지방조달청 임시사무실(9일 서울 명동 나라키움빌딩으로 이전)에서 만났다. 1시간30분 동안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는 “참사 1주기에도 특조위가 출범도 못하고 있어 위원장으로서 책임을 통감하고 국민들에게 죄송하다”면서 “특조위가 정상 궤도에 오르면 성역 없는 조사로 국민들의 여망에 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둔 심정은.
“본격적으로 조사에 들어가도 시원찮을 판에 특조위 운영을 놓고 아직도 표류하고 있다. 특조위원장으로서 국민과 유가족에게 송구스러운 마음뿐이다. 하루빨리 정식으로 출범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그리고 출범하면 특조위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 국민들이 원하는 진상을 만족스럽게 밝혀내겠다. 그것이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시행령안 입법예고(6일)가 끝난 뒤 해수부가 차관회의를 1주일 연기했는데.
“늦춘 것은 뭔가 보완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고 본다. 상황의 변화가 있다는 의미라서 일단 긍정적이다. 하지만 7일 뒤면 16일이다. 결국 특조위가 세월호 1주기에 출범하지 못하게 된다는 뜻이다. 안타깝고 다시 한번 국민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유기준 해수부 장관은 “시행령을 더 검토해 보겠다”며 9일로 예정된 차관회의 심의를 1주일 연기하겠다고 7일 밝혔다. 정부는 당초 입법예고 기간이 끝나면 차관회의(9일), 국무회의(14일)를 거쳐 시행령안을 확정할 예정이었다.)
-정부 시행령안의 핵심적인 문제점 몇 가지를 지적한다면.
“위원회 산하 진상규명·안전사회·피해자 지원 소위원회 등 3개 소위원회 위원장은 지원국의 업무를 각각 지휘·감독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정부안에서는 이 조항이 삭제됐고, 대신 기획조정실장과 그 아래 기획총괄담당관이 위원회 업무의 종합 조정 역할을 하도록 명시했다.
이해가 안 되는 대목은 기획조정실장과 기획총괄담당관은 모두 파견 공무원이 맡는다는 점이다. 잠재적 조사대상인 정부 부처에서 오는 공무원들이 각 소위 업무를 종합하는 것은 위원회가 조사 대상으로부터 독립돼야 한다는 원칙을 훼손시키는 것이다. 조직은 ‘3국’에서 ‘1국 2과’로 축소됐다. ‘진상규명국’만 위상을 원안대로 두고, ‘안전사회국’과 ‘지원국’ 등 두 국의 급을 ‘과’로 낮춰버렸다.
의혹을 여한 없이 조사하라는 것이 특조위의 정신인데 별다른 근거도 없이 진상규명 범위를 ‘정부 조사자료 분석’으로 규정하고 대책 마련도 해난사고로 제한했다. 특조위 정원도 특별법에 명시된 120명에서 90명으로 확 줄였다. 1년 내에 끝내려면 특별법이 허용하는 최대 인원이 조사에 착수해야 한다. 정부에서 정치적 부담을 느끼는 것 같다.”
-두 차례나 박근혜 대통령 면담을 요청했다. 성사되면 무슨 말을 할 것인가.
“박 대통령께서는 세월호 인양에 대한 이야기만 했지 시행령안에 대해선 아무런 언급도 안 하고 있다. 아직 청와대로부터 응답이 없는 상태다.
면담이 성사된다면 시행령안에 대한 부당성을 조목조목 따져보고 싶다. 지난해 5월 대국민 담화 등을 통해서 밝히신 세월호 참사의 철저한 진상 규명 약속이 진실이었는지도 확인해 보겠다. 그것이 진실이라면 지금의 시행령안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다. 또 특조위가 독립적이고 중립적으로 운영되도록 도와달라고 부탁드리고 싶다.”
-시행령 철회보다 부분 수정으로 갈 것 같은데 수정안이 온다면 어떻게 하겠나.
“그럴 경우 일단 수정안을 본 뒤 결정하겠다. 하지만 시행령안의 기조가 그대로 유지된다면 우리로서는 수용하기가 어렵다.”(이 위원장은 인터뷰 다음날 기자회견을 열고 시행령안을 철회하지 않을 경우 특조위는 주무부서로서 권한을 적극 행사해 자체적으로 만든 개정안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검찰 수사나 감사원 감사로 진상이 거의 나왔다는 의견도 있는데.
“당국으로부터 수사 및 감사 자료를 받지 못해 정밀하게 내용을 분석하지 못했다. 당국의 조사 결과에도 여야 합의로 특별법이 만들어진 것은 국민이 납득을 못하고 있기 때문 아니겠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지닌 특조위가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고 본다. 제대로 된 진상 규명을 못한다면 지금의 갈등과 분열은 영원히 치유할 수 없다는 것이 제 생각이다.
안전한 대한민국을 후세에 물려주기 위해서라도 세월호의 꼬인 실타래를 풀어야 한다. 그래야 조각조각 갈라진 대한민국이 진정으로 하나가 될 것이다.”
-특조위가 한쪽으로 치우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위원장으로 있는 한 균형 잡힌 시각을 갖도록 노력하고 있다. 지난 1월 말 여야 대표를 만나 ‘우리는 정치적 중립이다’라고 선언한 바 있다. 앞으로도 정치적인 중립성과 독립성을 엄격하게 유지해 갈 것이다. 위원 17명 중 추천경로가 달라 서로 견해차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의견을 모아 나가다 보면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고 본다.”
-세월호 인양에 대한 생각은.
“세월호 인양은 꼭 해야 하고, 그것도 빨리해야 한다. 대통령께서도 적극 검토한다는 말씀을 하셨고 그렇게 가는 분위기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조속히 인양해서 특조위가 직접 보고 조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정부가 정치적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고 했는데 대통령도 그런 점을 의식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건 잘 모르겠다. 가장 많이 물어보는 질문인데 다만 우리의 일관적인 원칙은 ‘성역은 없다’는 것이다. 특조위가 어떤 압력을 받아서도 안 된다고 본다. 조사는 투명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앞으로도 모든 조사 방향은 회의를 통해 결정되고 그 내용도 공개할 예정이다. 청문회 개최도 마찬가지다.”
이석태는 누구
이석태 위원장은 한국전쟁 중인 1953년 충남 서산에서 태어났다. 경복중·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72년 서울대 화학과에 입학해 3학년까지 공부하다 자퇴했다. 문학이나 철학을 공부하고 싶어서 다시 시험을 거쳐 서울대 인문계열에 입학했으나 마음을 접고 법학을 선택했다.
82년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사법연수원 수료 후 인권변호사의 길에 발을 디뎠다. 30년 동안 활동하면서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동성동본불혼 헌법소원, 일본군 위안부 배상청구권 위헌 결정, 호주제 헌법 불합치 결정 등 굵직굵직한 사건에 앞장섰다.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장(2000∼2001년)을 지냈으며 노무현정부 출범 후 첫 대통령공직기강비서관(2003년)을 맡기도 했다. 2008년 시민평화포럼 공동대표, 2011년 참여연대 공동대표로도 활동했다.
만난 사람=김준동 논설위원 jd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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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4-15 02: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