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리스트’ 파문] ‘56字 메모’, 청부피살 재력가 매일기록부와 닮은꼴… 메모 신빙성 입증해야

입력 2015-04-14 02:09
성완종(64) 전 경남기업 회장이 남긴 ‘56자 메모’는 지난해 청부살해된 서울 강서구 재력가 송모(사망 당시 67세)씨 금고에서 발견된 장부인 ‘매일기록부’와 여러모로 닮아 있다. 두 사람의 유품은 정관계 로비 의혹을 불러왔고, 검찰 수사의 방향을 틀게 했다.

그러나 매일기록부에 등장한 인물 중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된 사람은 송씨 살인을 교사한 김형식(45) 전 서울시의회 의원이 유일했다. 이마저도 녹록지 않았다. 매일기록부를 남긴 당사자의 진술을 확보하기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김 전 의원을 재판에 넘기기까지 여러 단계를 거쳐야 했다.

검찰은 우선 매일기록부 전체의 신빙성을 입증해야 했다. 송씨는 A4용지 크기의 줄노트에 매일 들어오고 나간 금액을 기록해뒀다. 페이지마다 날짜, 지출내용, 총액, 비고까지 깨알 같은 글씨로 정리했다. 당시 수사팀은 송씨가 기록한 내용과 실제 신용카드 지출내역, 만난 사람 등을 비교해 볼 때 기록의 내용이 사실에 부합한다고 판단했다.

반면 성 전 회장이 남긴 메모가 담고 있는 정보는 빈약하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부분을 제외하면 돈이 건네진 시기가 특정되지 않았다. 이름과 금액만 있을 뿐이다. 그나마 숨지기 전 경향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일부 인사에게 돈을 건넨 시기를 언급했지만 공소시효 범위 안에 들어온 인물은 홍준표 경남지사(2011년 6월),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2012년 대선) 정도다.

또 메모의 등장인물 8명은 모두 금품수수 사실을 강력 부인하고 있다. 검찰로서는 메모와 통화 녹취록 밖에서 주변 증거를 찾는 데 주력할 수밖에 없다. 서울의 한 판사는 13일 “금품을 건넬 당시 관여했던 측근들의 매우 구체적 진술 등이 없는 한 유죄 입증은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재력가 송씨 사건 때 검찰은 매일기록부에 기재된 김 전 의원의 5억원 뇌물수수 혐의를 뒷받침하는 증거로 송씨가 돈을 건넬 때 썼던 차용증과 계좌내역, 송씨 아들의 증언 등을 첨부했다. 검찰은 매일기록부에 등장한 것으로 알려진 경찰, 구청·세무공무원 수십명에 대해서는 계좌추적 등에서 유의미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

뇌물죄를 적용할 경우 대가성을 입증해야 하는 문제도 있다. 송씨에게서 총 1780만원을 받은 전 검사 A씨의 경우 돈이 전달된 사실은 밝혔지만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하지 못했다. 이미 송씨가 사망한 상황에서 건네진 돈에 사건청탁 등 대가성이 있었는지를 밝히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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