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서완석] 스포츠의 또 다른 감동, 가족사랑… 마스터스가 보여준 가족애

입력 2015-04-14 02:45

13일(한국시간) 오전 전 세계 골프팬들은 조던 스피스(미국)라는 새로운 마스터스 챔피언에게 열광했다. 만 22세가 채 되지 않은 나이에 ‘명인들의 열전’ 마스터스에서 우승했으니 온갖 찬사가 그에게 주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벌써부터 타이거 우즈(미국)의 후계자가 탄생했다고 야단들이다.

하지만 또 다른 ‘챔피언’도 있었다. 그는 까다롭기 그지없는 마스터스 출전 자격을 따냈음에도 불참한 선수였다. 아픈 아내의 병간호를 해야 한다며 대회 출전을 포기한 마크 레시먼(호주)이다.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에서 활약하기도 했던 그는 3살, 2살인 어린 아들까지 있어 대회 출전보다 가정을 택하기로 했다. 마스터스가 주는 감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무려 44년간 마스터스에 출석해온 ‘퍼팅의 달인’ 벤 크렌쇼(64)는 2라운드가 끝나고 정들었던 팬들,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장과 작별을 고했다. 마스터스에서 은퇴하는 날이었다. 마지막 퍼팅을 마친 크렌쇼는 동료들과 작별인사를 나눈 뒤 맨 먼저 세 딸과 아내의 따뜻한 포옹을 받았다. 아내는 눈물까지 흘렸다. 이 장면은 전 세계에 중계방송되며 승부의 세계인 마스터스의 또 다른 측면, 즉 따뜻한 가족애를 그리고 있었다.

이처럼 스포츠 경기는 팬들에게 박진감 넘치는 승부의 세계를 선사하지만 가정의 소중함, 가족사랑도 진하게 배어 있다. 미국 스포츠는 치열한 승부 사이에 이 같은 가족사랑을 빚어 넣어 따뜻한 감동 드라마를 함께 연출한다.

현대 스포츠의 주요 덕목은 상대에 대한 예절과 결과에 대한 깨끗한 승복을 요체로 한다. 공정하게 경기에 임하고 겸손한 승리자, 당당한 패배자가 되는 것이다. 한편 정치·사회학적으로 스포츠는 사회 통합과 외교 수단으로 의미를 갖는다. 한국이 서울올림픽과 한일월드컵을 치르면서 전 국민이 하나된 것처럼 스포츠는 사회 갈등을 일시 마비시키고 통합의 매개 역할을 해낸다. 다민족 국가로 엄청난 인종적 갈등을 겪고 있는 미국도 스포츠를 통한 사회 통합 기제가 가장 잘 작동하는 나라다. 외교수단으로서 스포츠는 1970년대 초 미국과 중국 사이의 핑퐁 외교가 가장 대표적이다. 한국도 남북이 정치적으로 교착상태에 빠지면 빠짐없이 등장하는 게 남북 스포츠 교류였다.

하지만 우리 스포츠 역사를 보면 이 같은 정치·사회학적 목적만 두드러질 뿐 마스터스가 보여준 것처럼 따뜻한 가족애와 감동을 주는 데는 소홀한 것 같다. 아직도 스포츠 현장은 치열한 승부만 강조된다. 이기지 못하면 감독들 목이 날아간다. 지난해 프로야구에서 포스트시즌에 오르지 못한 감독들이 약속이나 한 듯 모두 현장에서 물러났다. 성적 지상주의의 절정을 보여준다. 정규리그에서 1위를 했지만 챔피언결정전에서 우승하지 못해도 감독이 책임졌다. 최근 끝난 여자프로배구 도로공사의 경우다.

이제 우리의 스포츠 환경도 조금은 달라져야 한다. 살벌한 경쟁 대신 따뜻한 사랑도 함께 담아내야 한다. 시상식에 동반한 가족에게 밥만 먹일 게 아니라 시상대에 함께 불러내 선수와 함께 축하 받도록 해주자. 승리는 선수만의 것이 아닌, 그를 위해 희생한 가족 모두의 것이기 때문이다. 선수와 가족이 함께 축하를 받는 미국 스포츠의 시상식 장면은 볼 때마다 감동을 준다. 마스터스 우승자 스피스가 가족, 친지들과 오랫동안 축하 포옹을 나누는 장면은 버디 이상의 진한 여운을 골프팬들에게 남긴다. 이런 맥락에서 국내 프로야구도 유행처럼 된 연예인 시구를 지양하고 가족들을 더 자주 등판시켰으면 좋겠다. 이제 스포츠의 덕목에 가족사랑을 새롭게 추가할 때도 됐다.

서완석 체육전문기자 wssu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