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보는 게 아니라 비리를 쫓는 것이다.” 부정부패 발본색원의 대원칙 아래에서 진군하던 검찰 수사가 결국 전·현직 정권을 모두 마주하게 됐다. ‘수사는 생물’이라는 검찰의 격언 그대로다. 지난달부터 여러 갈래로 진행되던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수사는 이명박정부의 실세 비리에 집중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여기에 ‘성완종 리스트’의 실체 규명을 위한 특별수사팀이 더해지면서 박근혜정부의 ‘살아 있는 권력’ 8명도 한순간에 검찰 수사선상에 올랐다.
검찰은 여러 차례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해 재판에 넘긴 경험이 있다. 하지만 같은 정당에서 나온 2개의 전·현 정권을 동시에 겨냥한 경우는 많지 않다. 세월호나 정윤회 문건 수사에서 빠짐없었던 ‘가이드라인 논란’이 부담스러울 만도 하지만 검찰의 의지는 어느 때보다 확고해 보인다. 김진태 검찰총장은 “검찰이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한점 의혹도 남기지 말라”고 지시했다.
해체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기능을 물려받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전체가 전·현 정권에 대한 사정 수사에 동원된 상태다.
13일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임관혁)는 이명박정부의 대표 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 자원외교 실패와 관련해 광범위한 비리를 수사 중이다. 특수2부(부장검사 조상준)가 파헤치는 포스코그룹 비자금 조성 의혹은 이명박정부 시절의 정·관계 로비 가능성으로까지 뻗어나간 상태다. 특수4부(부장검사 배종혁)는 이명박정부에서 이례적으로 장관급 대우를 받으며 청와대 교육문화수석비서관을 지낸 박범훈(67) 전 수석의 직권남용 비리를 캐고 있다.
이 때문에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의 수사는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전 정권 실세들을 겨냥한 것이라는 말이 많았다. 그러나 지난 10일 특수1부 수사를 받다가 극단적 선택을 한 성완종(64) 전 경남기업 회장이 남긴 쪽지 한 장이 상황을 급변시켰다.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에는 현직 국무총리와 전·현직 대통령 비서실장 등 박근혜정부와 여당 주요 인사의 이름이 등장한다.
금품 메모의 정황을 뒷받침하는 진술 및 보도가 잇따르자 검찰은 지난 12일 검찰총장 직속 특별수사팀을 꾸렸다. 이 팀에는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가운데 상대적으로 가용 인력이 있던 특수3부(부장검사 김석우)가 임시 소속됐고, 13일부터 리스트에 언급된 인사를 중심으로 직접 수사에 착수했다. 특별수사팀은 2012년 대선자금까지 정조준하고 있다. 검찰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기로 하면서 전 정권을 표적 수사한다는 논란은 힘을 잃었다.
특별수사팀이 공식 출범한 이날은 공교롭게도 이완구 총리가 ‘부정부패 척결 특별담화’를 취임일성으로 내놓은 지 꼭 1개월이 되는 날이다. 정치권에서 여야가 한목소리로 성역 없는 수사를 강조하는 상황이라 검찰 내부에선 “우리만 잘하면 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특별수사팀은 리스트에 언급된 인물 외에도 또 다른 ‘X파일’이 등장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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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4-14 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