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년, 갈등을 넘어 치유로] 정부 ‘뒷북 대응’ 그만… 재난 대비 선제적 조치 필요

입력 2015-04-14 02:58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사흘 앞둔 13일 경기도 안산 단원고 2학년 교실 칠판에 세상을 떠난 학생들을 그리워하는 글귀가 가득 적혀 있다. 바로 옆 보조칠판에는 희생된 학생들의 얼굴 사진이 하나하나 담겼다. 안산=김지훈 기자

완벽히 안전할 수는 없다. 피해갈 수 없는 재난도 있다. 통제할 수 있는 위험보다 통제할 수 없는 위험이 많다. 세월호 참사처럼 정부가 책임지지 못하는 위기 상황은 언제 어디서든 벌어질 수 있다. 안전 불감증에서 벗어나려면 이 막막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의식은 많이 개선됐다. 만족스럽진 않아도 정부에서 방법을 찾고 방침을 정하듯이 학회도 세미나를 수없이 했다. 1년 전보다는 좋아졌을 거다. 그럼에도 사고는 계속 난다. 아직도 안전 불감증 같은 게 존재하는 것이다.”

재난정보학회장인 전찬기 인천대 도시건설공학과 교수는 세월호 참사 이후 1년간의 변화와 현실을 이렇게 진단했다. 재난과 안전사고를 남의 일로 여기는 안전 불감증은 좀처럼 깨지지 않는 타성으로 남아 있다. 사고 소식을 접했을 때 주변을 점검해보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대개 안타까워하거나 안도하는 데 그칠 것이다.

안전 문제에 둔감한 상태로는 ‘참사의 그림자’를 알아채기 어렵다. 김태환 용인대 특수재난연구소 교수는 “세월호 침몰 같은 대형 참사는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에 앞서 나타난 수없이 많은 조짐을 간과해 빚어진 결과”라고 말한다. 그의 진단대로라면 전조는 지금도 빈발하고 있다. 지난 1년간 요양병원 화재, 환풍구 붕괴, 오피스텔 화재, 캠핑장 화재 등이 끊이지 않았다. 그 자체로 참사인 사고였다. 김 교수는 “이런 게 계속 쌓이다보면 언젠가 세월호 같은 대형 사고가 다시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안전 불감증은 개인의 안전 불감증보다 더 큰 비극을 낳는다. 세월호 침몰 때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것은 선박의 느닷없는 전복보다 정부 당국의 무능이었다. 정부가 위기 상황에서 무능력을 드러낼 때 국민은 참담해진다. 전 교수는 “삼풍백화점 붕괴로 500여명이 죽은 지 20년이 지났다. 그 사이 선진국이 됐다고 하는데 왜 정부의 대응 능력이 그 정도밖에 안 되는지, 그동안 뭘 했는지에 대한 분노와 자괴감으로 충격이 과거보다 더 컸다”고 분석했다.

정부가 모든 재난을 예측하고 대비하는 게 가능한가. “우리나라는 자연재해엔 어느 정도 대처하는 편인데 사회재난 쪽으로는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 많다. 환풍구 붕괴, 캠핑장 화재 같은 경우가 그렇다. 경험해보지 못한 채 당하는 사건들이다.” 전 교수는 이를 인정하면서도 “당하고 나서야 ‘이것도 위험하네’ 하는 건 정부가 아니다. 정부는 선제적으로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경험하지 못한 상황’에 대비하는 시뮬레이션(가상실험)을 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전 교수는 만약 고속철도의 교량 상판이 붕괴될 경우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예로 들었다. 그는 “서울 외곽고속도로에서 화재가 나 3개월 동안 차량을 우회시킨 적이 있다. 고속철도는 우회도 안 된다. 사고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예측해서 대비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위험에서 건져줄 것이라는 환상은 1년 전에 깨졌다. 그럼에도 정부가 재난 대책을 주도하는 관행은 바뀌지 않고 있다. 전국재해구호협회 배천직 박사는 “우리나라는 정부가 필요하다고 하면 ‘만들어 시행하시오’ 하는 식이다. 관련법에는 공무원이 할 일만 나와 있지 국민이 필요한 게 뭔지는 나와 있지 않다”고 꼬집었다. 정부가 하달하는 식의 제도나 대책은 현실을 제대로 따라가기 어렵다. 현장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탓에 빈틈이 생길 수밖에 없다. 세월호가 침몰 중일 때 정부 당국은 승객을 전원 구조했다는 뜬금없는 발표를 내놨었다. 이런 정부만 믿고 아무 대비를 하지 않는다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다.

미국이나 일본은 주민 스스로 나서서 지역사회가 재난대응 체계의 한 축을 이루도록 한다. 필요한 것을 요구하면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한다. ‘9·11 테러’ 이후인 2002년 1월 조직된 미국 시민연합은 국토안보부의 지원을 받아 재난대응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시민에게 재난예방과 응급구조 요령 등을 교육하고, 전국의 지역재난대응팀을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이 단체는 2005년 9월 초대형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남부를 덮쳤을 때 매일 수만명의 자원봉사자를 현장으로 보냈다.

일본은 재해대책 기본법에 근거해 주민들이 반상회나 자치회 규모로 자주방재조직을 구성하도록 한다. 이들은 ‘우리 지역은 우리가 지킨다’는 의식으로 묶여 있다. 방재교육과 훈련뿐 아니라 안전점검도 벌인다. 재해가 발생했을 때에는 정보 수집과 전달, 초기 대응, 피난 유도, 구출·구호 등에 나선다. 배 박사는 “특히 일본은 ‘내 안전은 내가 책임진다’는 분위기가 어느 정도 형성돼 있다. 우리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쳐주는 곳이 없다. 분위기가 형성되더라도 이끌고 갈 단체나 기관조차 없다”고 말했다.



재난이 발생하면 판단력과 분별력이 급격하게 떨어진다. 그 상황에서 사태를 분석하고 대처방법을 찾기는 쉽지 않다. 대응요령은 머리보다 몸에 입력돼 있어야 한다. 전문가들은 세월호 참사 이후 입이 마르도록 재난·안전교육을 강조해 왔다. 교육 내용을 충실하게 하고, ‘국영수’처럼 재난·안전교육도 필수 교과로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지속적인 반복 훈련과 교육이 필수라고 말한다.

전 교수는 “법이나 규정은 예전에도 있었다. 매뉴얼을 500쪽이나 만들면 뭐하나. 익숙해져야 한다”고 했다. 2011년 4월 동일본대지진으로 대규모 쓰나미 피해를 당한 일본은 주민들에게 ‘쓰나미 경보가 울리면 대피소로 도망가라’ ‘부모는 자식을 찾지 말고 자식은 부모를 찾지 말고 대피소로 피하라’고 교육한다. 전 교수는 이 사례를 들며 “귀에 못이 박히도록 교육해야 반사적으로 행동이 나온다. 그런 훈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문종욱 한국화재소방학회 학술이사는 “서울 여의도 63빌딩 옥상에서 1층까지 계단을 이용해 내려오려면 1시간 정도 걸릴 것이다. 위기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대처 요건은 체력이라는 말”이라고 했다. 그는 “평소 훈련받은 대로 마스크를 착용하고 침착하게 대피하더라도 심폐기능과 하체근력에 따라 사상자의 차이가 발생한다. 응급조치 요령 교육과 생활 속 체력단련이 중요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세월호 참사가 다시 발생할까. 이런 질문을 던지면 국민 대다수가 ‘발생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무슨 조치를 해야 안전 불감증이 사라지고 끔찍한 사고가 발생하지 않을까.”

문 이사는 근본적으로 마음가짐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인명피해는 보통 사고 발생 10분 안에 결정된다. 대피·대응 시간이 지연되는 건 당사자든 구조 당국이든 재산 손실을 피하려 하면서 빚어지는 경우가 많다. 재난이 발생하면 사람부터 구해야 한다는 원칙이 확고하게 세워져야 한다.

문 이사는 “인명의 소중함을 인식하는 시민의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빠른 대피 훈련도 중요하지만 ‘묻지 마’ 방화 같은 사태를 막으려면 갈수록 각박해지는 시민 정서의 회복이 우선돼야 한다”고 했다. 이어 “근본으로 돌아가서 국민의 삶 전반에 흐르는 가치관의 재정립이 필요하다. 정부는 인간성 회복, 건전한 가치관 형성을 위한 마음고침이 시급한 과제임을 인식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강창욱 황인호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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