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 농장이 아닙니다… 교회입니다” 경기 고양시 푸른숲교회 ‘실내농업’으로 주민들과 소통

입력 2015-04-14 02:14
최호 푸른숲교회 목사(왼쪽)가 지난달 24일 경기도 고양 백석동 교회를 찾은 ‘하다 협동조합’ 조합원들에게 밀싹 재배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고양=허란 인턴기자
카페 같은 외관의 푸른숲교회 앞에 선 최호 목사. 고양=허란 인턴기자
경기도 고양시 백석동 상가 골목에 있는 푸른숲교회의 외관은 색다르다. 아담한 정원에 놓인 갖가지 채소 화분들, 통유리로 만든 큰 창문만 보면 카페인지 교회인지 헷갈릴 정도다. 간판에는 ‘자연과 환경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열린 공간 푸른 숲’이란 문구가 쓰여 있었다. 간판 아래 ‘대한예수교장로회 푸른숲교회’라고 적힌 작은 나무 현판만이 이곳이 교회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교회 안으로 들어서자 왼쪽으로 밀과 상추 등 채소를 키우는 ‘윈도우 팜(Window Farm)’이 눈에 들어왔다. 오른쪽 테이블에서는 ‘하다 협동조합’ 조합원 7명이 업무를 보고 있었다. 최호(59) 목사는 간편한 복장으로 밀싹의 상태를 점검하다 기자를 맞이했다.

“2012년 교회 개척 후 성전을 카페처럼 꾸며 지역 주민과 공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개방했습니다. 장의자, 헌금함 등을 따로 놓는 대신 창가를 농장처럼 꾸몄지요. 실내농업에 관심이 있어 교회를 방문한 이들에게 무료로 씨앗을 나눠주고 실내농업 노하우를 알려주고 있어요. 일할 곳이 필요한 사람에겐 사무 공간으로 쓰라고 교회를 내줍니다. 그냥 구경하러 들르는 주민도 꽤 돼요. 스님도 오는 걸요.(웃음)”

최 목사가 교회를 카페처럼 꾸미고 실내농업을 시작한 건 지역 주민과 소통하기 위해서다. 교회 개척 전 인근 아파트로 전도에 나섰다가 주민 여럿에게 거절당한 게 계기가 됐다. 주민 신고로 경비원에게 쫓겨난 일도 부지기수였다. 주민들과의 ‘벽’을 허물고 어떻게 소통할까 고심하던 그가 떠올린 게 실내농업이었다. 푸른 식물을 교회에 키우면 주민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기회가 생길 것 같았다.

최 목사는 집 근처 텃밭에서 유용미생물(EM)로 배추를 키우던 경험을 살려 실내 수경재배에 도전했다. 그러나 실내농사는 텃밭과 달랐다. 햇볕이 없어 인공조명을 이용해야 했고 실내 수경재배가 익숙하지 않아 교회 안엔 항상 습기가 찼다.

2012년 3월 교회 개척 직후 ‘맨땅에 헤딩하듯’ 시작한 실내농업은 6월쯤 되자 자리를 잡았다. 블로그도 개설해 베란다 등 실내에서 기르기 적합한 채소 종류, 진딧물 제거법, 계절별 작물 재배법 등 노하우를 상세히 공개했다.

교회 안팎에 녹음이 우거지자 지역 주민들이 먼저 다가왔다. 최 목사는 찾아온 이들에게 밀싹, 상추, 홍차버섯, 티벳버섯 등의 모종을 무료로 나눠주며 재배방식이 담긴 전도지도 전했다.

“교회 이름이 적힌 전도지라도 재배방법이 담겨 있으니 거부감 없이 가져가더라고요. ‘교회에서 이런 일도 하느냐’며 호의적으로 보는 이웃도 많았고요. 평일에는 10여명, 주말에는 20여명이 스스로 교회를 찾아옵니다.”

그가 교회에서 실내농업과 EM 비누 제조법을 배우는 푸른숲 회원을 모집하는 등 사역을 확대하자 일부 성도들은 거부감을 보였다.

“교회가 지역과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실내농업으로 고용도 창출하는 사회적 기업을 꿈꿨는데…. 절반 가까운 성도가 떠나 15명만 남았어요. 수요예배, 주일예배 모두 드리지만 목사가 자꾸 지역복지를 이야기하니 이해하기 힘들었나 봅니다.”

최 목사는 어려운 상황에도 실내농업과 사회적기업에 대해 계속 공부했다. 지난해 6월부터 3개월간 서울시청에서 연 사회적기업 및 협동조합에 관한 교육도 받았다.

지역의 청소년진로 지도사들로 구성된 ‘하다 협동조합’ 관계자가 지난해 11월 찾아왔다. 협동조합 사무실이 필요하니 평일에 교회 공간을 무상으로 사용하게 해 달라고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최 목사는 ‘협동조합이 추후 분가할 때 새로 얻은 사무실을 교회 예배당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한다’는 조건으로 허락했다. 최 목사는 협동조합의 고문으로 활동하며 조합원들과 함께 마을기업 준비를 돕고 있다. 지역 장애인 협동조합도 준비 중이다.

“제 꿈은 마을 골목마다 성도를 보내 각자 처소와 사무실에서 예배를 드리게 하는 거예요. 협동조합이 일종의 구역인 셈이지요. 이를 위해 구직자나 경력단절여성 등 더 많은 이들이 꿈을 찾고 적성을 키울 수 있도록 교회를 계속 개방할 겁니다. 교회가 복음으로 마을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 이것이 한국교회의 희망이 될 것으로 믿거든요.”

고양=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