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받은 줄리안 무어의 ‘스틸 앨리스’… 기억이 사라져도 나는 여전히 살아갑니다

입력 2015-04-15 02:45
영화 ‘스틸 앨리스’에서 알츠하이머를 앓는 대학교수 역을 맡아 섬세하고 깊이 있는 연기를 선보인 줄리안 무어. 점점 기억을 잃어가는 삶에 당당히 맞서는 폭넓은 캐릭터로 생애 첫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사진은 집에서 요리를 하다 기억이 나지 않아 당황하고(위), 병명을 알고 충격에 빠진 모습.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얼마 전에 오스카상을 받으면 수명이 5년 연장된다는 글을 읽었어요. 아카데미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려요. 왜냐면 남편이 저보다 어려서 오래 살아야 하기 때문이죠. 늘 고립된다는 느낌을 받고 있을 알츠하이머 환자들이 이 영화를 통해 조명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루게릭 투병 중인 리처드 글렛저 감독에게 이 영광을 돌리고 싶어요.”

지난 2월 23일(한국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87회 아카데미 영화상 시상식에 ‘스틸 앨리스’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줄리안 무어(55)의 수상소감이다. 다섯 번째 후보 끝에 생애 첫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무어는 “이보다 더한 영광은 없다”고 덧붙여 기립박수를 받았다. 그는 이 영화에서 알츠하이머에 걸린 여교수 역을 맡아 열연했다.

‘스틸 앨리스’의 국내 시사회가 14일 열렸다. 아카데미와 유독 인연이 없었던 무어에게 상을 안긴 이유는 무엇인가. 1988년 데뷔한 그는 98년 ‘부기나이츠’와 2003년 ‘디 아워스’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르고, 2000년 ‘애수’와 2003년 ‘파 프롬 헤븐’으로 여우주연상 후보에 각각 이름을 올렸지만 그동안 한 번도 오스카를 품에 안지 못했다. 2003년 ‘파 프롬 헤븐’으로 베니스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고 같은 해 ‘디 아워스’로 베를린영화제에서 메릴 스트립, 니콜 키드먼과 함께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후 지난해 ‘맵 투 더 스타’로 칸영화제 여우주연상까지 세계 3대 영화제를 석권한 그녀가 아니던가. 올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으로 국제 영화제 그랜드슬램(4관왕)을 차지한 무어이기에 그의 작품에 거는 기대가 크다.

영화는 2008년 미국의 권위 있는 브론테상을 수상하고 40주간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에 선정된 원작 소설 ‘스틸 앨리스’를 바탕으로 했다. 하버드 신경학 박사 출신의 신예 작가 리사 제노바가 알츠하이머에 걸린 할머니의 소식을 접하고, 할머니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과정과 마음은 어떤 것일까 하는 궁금증에서 집필을 시작했다고 한다.

스토리는 다소 신파적이다. 아내와 엄마 그리고 대학 교수로 행복한 삶을 살던 앨리스가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기 시작하면서 온전한 자신으로 살아남기 위해 당당히 삶에 맞서는 이야기를 담았다. 무어는 점점 기억을 잃어가는 캐릭터의 폭넓은 감정을 섬세하고 깊이 있는 연기로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촬영 전에 알츠하이머에 대해 오랜 시간 조사하고 경험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뉴욕에 있는 협회와 후원 단체에 직접 찾아가 알츠하이머를 겪는 다양한 여성들과 대화를 나누며 그들이 받는 인지능력에 대한 테스트를 직접 체험하기도 하고 수많은 책과 영화, 다큐멘터리까지 섭렵했다.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여성과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앨리스의 모습을 완성해 나갔다. 알렉 볼드윈 등 동료 배우들도 무어의 열성에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이라고 자부해왔던 앨리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자꾸만 기억이 흐릿해진다. 한 번은 저녁 약속을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심지어 큰딸 이름까지 가물가물해진다. 행복했던 추억, 사랑하는 사람들까지도 모두 잊어버릴 수 있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끼는 그는 옛 시절의 자신으로 돌아가기 위해 안간힘을 쏟는다.

무어는 이 역할을 선택하게 이유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감정과 경험, 지성 등 스스로 모아온 것들을 잃게 되는 상황에서 자신의 존재에 대해 고민하는 영화의 주제가 강렬하게 다가왔다”고 밝혔다. 40년 가까운 배우 생활 중 최고의 연기를 펼쳐 보인 그에게 관심이 쏟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루게릭병을 앓다 지난 3월 숨진 글랫저 감독의 유작이다. 30일 개봉. 12세 관람가.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