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이슈] 아르메니아인들의 저 눈빛… 터키가 한 일을 알고 있다

입력 2015-04-14 02:45
오토만 제국의 아르메니아인 집단 말살 계획에 따라 1915∼1917년 100만명 이상의 아르메니아인이 집단 학살되거나 시리아 사막지대와 산악 오지 등으로 강제이주되는 과정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915년 9월 강제이주를 앞둔 아르메니아 여성들과 아이들이 시리아 사막으로 향하는 모습.국민일보DB
오는 24일 아르메니아 수도 예레반, 터키 수도 이스탄불과 뉴욕, LA, 워싱턴DC, 파리, 모스크바, 상파울루 등 세계 주요 도시에서는 1세기 전에 일어난 참혹한 사건에 대한 대규모 추념식이 열린다. 한국에서는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은 ‘아르메니아인 집단학살(Armenian Genocide)’ 100주년 추모식이다.

100만∼150만명이 희생된 것으로 알려진 이 사건은 20세기 최초의 제노사이드(genocide·집단학살)로 평가된다. 미국에서는 이 사건을 ‘집단학살’로 인정하겠다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대선 공약 이행 여부를 둘러싸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이 참극에 대한 관심이 ‘집단학살’이라는 용어를 둘러싼 찬반에만 쏠려 이 사건이 초래한 인간적인 고통과 진정한 본질이 흐려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20세기 최초의 제노사이드=국제법에서 계획적이고 조직적으로 한 민족이나 종족의 일부나 전부를 말살하려 한 행위를 지칭하는 용어가 집단학살이다. 집단학살이라는 용어를 들으면 가장 먼저 연상되는 사건은 2차 세계대전 중 독일 나치에 의한 유대인 대학살을 뜻하는 ‘홀로코스트(Holocaust)’일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20여년 전 당시 오토만 제국(현 터키)에 의해 아르메니아인들을 절멸시키려는 계획이 조직적으로 행해졌다는 게 역사학계의 지배적 견해다.

반면 터키는 오토만제국 붕괴 과정에서 일어난 내전 때문에 아르메니아인과 터키인이 동시에 희생됐다며 학살행위를 부인하고 있다. 특히 집단학살이라는 단어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미국 미네소타 대학 ‘홀로코스트 및 제노사이드연구센터’에 따르면 1914년 1차 세계대전 직전 당시 오토만제국 영토에 거주하는 아르메니아인은 213만명에 달했다. 하지만 1922년에는 48만여명만 남은 것으로 집계됐다. 두 수치 차이가 모두 오토만제국의 조직적 계획에 따라 희생된 아르메니아인 수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역사학자들은 오토만제국의 아르메니아인 집단말살 계획에 따라 1915∼1917년 100만명 이상의 아르메니아인이 집단학살되거나 시리아 등의 사막지대와 산악 오지로 강제 이주되는 과정에서 사망했다고 추정한다.

1913년 오토만제국의 권력을 장악한 민족주의 성향 ‘젊은 터키당’은 1차 세계대전 때 독일을 중심으로 한 동맹국에 가담했다. 하지만 연합국 측 러시아와의 주요 전투에서 참패한 젊은 장교들은 대부분이 기독교도인 아르메니아인들을 러시아의 내통자이거나 잠재적인 동조자로 의심했다.

이에 따라 아르메니아인들을 제국의 적으로 선전하는 대대적인 캠페인을 시작한 ‘젊은 터키당’은 1915년 4월 24일 수도 이스탄불에서 수백명의 아르메니아인 지식인을 체포한 뒤 처형했다. 매년 4월 24일 아르메니아인 대학살 추도식은 이날을 기념해 열린다.

아르메니아인들에 대한 집단학살의 배경에는 주로 동부 터키에 거주했던 아르메니아인들이 기업가와 상인으로 부유층인데 비해 터키인들은 빈곤층이라는 계급적 이질감, 터키인들이 무슬림인데 비해 아르메니아인들이 기독교도라는 종교적 이유도 작용했다.

사막 등으로 집단 이주되며 기아와 갈증, 전염병에 죽어간 아르메니아인들의 비극에 대해 당시 서방 외교관들의 기록이나 언론인, 여행자들의 기사와 회고록 등 충분한 역사적 증거가 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분석했다. NYT만 해도 1915년에만 아르메니아인 집단학살을 보도한 기사가 145건에 이른다.

◇오바마, 정치적 부담 커져=예레반에서 열리는 100주년 추념식에는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오아힘 가우크 독일 대통령이 참석하며 캐나다는 두 장관이 포함된 정부 대표단을 파견한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12일 아르메니아 학살 100주년 특별 미사를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에서 집전했다. 교황은 미사에서 “지난 세기에 인류는 세 차례 거대하고 전례 없는 비극을 겪었으며 20세기 최초의 대학살(genocide)로 여겨지는 첫 번째 비극은 아르메니아인들에게 닥쳤다”고 당시 사건을 대학살로 규정했다.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을 일으킨 당시 오토만제국의 계승자인 터키 정부에 대해 공식적으로 집단학살을 인정하라는 국제사회의 압력도 커지고 있다.

지난 6일 미 하원의원 49명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이 사건을 집단학살로 인정할 것을 촉구하는 공개서한을 보냈다. 로버트 돌드(일리노이·공화)와 프랭크 팔로네(뉴저지·민주) 의원이 주도한 이 서한에는 에드 로이스(캘리포니아·공화) 하원 외교위원장도 서명했다.

이들은 서한에서 24일 100주년에 맞춰 오바마 대통령이 이 사건을 집단학살로 확실하고 강력히 규정하는 것은 당시 아르메니아인, 그리스인, 아시리아인과 다른 기독교도 희생자들을 위로하는 길이라고 지적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부담도 커지고 있다. 2008년 대선운동 기간 중 그는 “아르메니아인 집단학살은 개인적 주장이 아니라 엄청난 역사적 증거로 뒷받침되는 사실”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그는 대통령이 되면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인정하겠다고 약속했었다. 하지만 집단학살로 인정할 경우 터키 정부의 강력한 항의 등을 의식한 때문인지 취임 이후 이를 지키지 않고 있다.

지난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당시 총리)은 아르메니아 대학살 99주년을 맞아 ‘이 학살은 우리 모두의 고통’이라며 처음으로 애도 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올해는 대학살 100주년 다음 날인 4월 25일 1차 세계대전 때 수십만명의 사상자가 난 연합군의 갈리폴리 상륙작전 100주년 기념식을 대대적으로 거행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아르메니아 대학살로 쏠리는 국제사회의 이목을 돌리기 위한 얄팍한 행보라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터키는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의 ‘대학살’ 규정에 대해 앙카라 주재 바티칸 대사를 외무부로 불러 해명을 요구한 데 이어 바티칸 주재 터키 대사까지 본국으로 소환하는 등 국제사회의 압력에 강하게 반발하는 모양새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