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명한 캅카스 지역 전문가인 토머스 드 왈(사진) 미국 카네기평화재단 선임연구원은 아르메니아 대학살에 대한 터키 정부의 태도가 최근 조금씩 변하고 있는 것은 희망적 신호라면서 터키 내 진보세력은 이 사건을 집단학살로 인정할 것을 요구하며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고 말했다.
드 왈 연구원은 9일(현지시간)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대선운동 기간에 이 사건을 집단학살로 공식 인정하겠다고 한 약속 불이행 등으로 정치 이슈화되고 있지만 미국의 움직임은 결국 2차적 문제라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지난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당시 총리)이 ‘비인간적인 집단이주’라면서 이 사건에 대해 애도의 뜻을 전한 것은 분명히 진일보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이제는 터키 지식인들이 ‘금기’였던 이 사건에 대해 글을 쓰고 공개리에 의견을 발표하며, 이 주제에 대한 책을 출판하고 있다고 전했다.
드 왈 연구원은 엄청난 희생자와 참혹함에 비해 이 사건이 왜 그렇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1915∼17년의 아르메니아인 집단학살은 1차 세계대전 중 최악의 잔학행위일 것이라며 당시에는 이 사건이 광범위하게 알려졌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후 사건의 주요 현장이었던 오토만제국과 러시아가 터키와 소련이라는 두 신생 국가로 탈바꿈하는 ‘국가건설’에 몰두하면서 실제 벌어진 일들이 잊혀지기 시작했고, 아르메니아인 생존자들도 생계를 꾸려나가는 데 급급해 이를 이슈로 만들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30년 전부터 이 사건에 대해 본격적인 문제제기가 시작됐으며 이제는 이와 관련해 10여권의 저서가 출간될 정도로 역사적 평가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당시 오토만제국이 아르메니아인뿐만 아니라 아시리아인 등 일부 다른 소수민족의 절멸을 시도한 것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드 왈 연구원은 “이 참혹한 사건이 100주년을 맞은 가운데 세계의 관심이 집단학살이냐 아니냐는 법률적인 문제로 집중되는 듯하다”면서 “이는 이해할 만하지만 당시 희생자와 그 후손들이 겪은 인간적인 고통과 기억은 이보다 더 중요한 부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월드 이슈-인터뷰] “집단학살 희생자·후손들 겪은 고통이 무엇보다 중요”
입력 2015-04-14 02: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