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쿠바 59년 만의 만남-미국·쿠바 관계는] CIA, 1961년 피그만 침공… 이듬해엔 양국 핵전쟁 위기

입력 2015-04-13 02:43

미국 플로리다에서 쿠바까지는 90마일(144㎞) 정도 떨어져 있지만 양국이 1961년 국교 단절 이후 다시 만나기까지는 반세기 이상의 세월이 걸렸다.

양국 관계는 19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쿠바는 스페인 식민지였다. 그런데 스페인이 쿠바인을 자주 탄압하고, 이로 인해 쿠바에서 자주 소요가 발생하자 1898년에 미국이 스페인을 상대로 전쟁을 선언했다. 쿠바에 재산이 있는 미국인들이 있었고, 소요로 인해 쿠바 설탕값이 불안정해지면 미국경제도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전쟁은 수개월 만에 미국의 승리로 끝났고, 그해 12월 쿠바는 독립하고 푸에르토리코와 괌, 필리핀 등 다른 스페인령은 미국 영토로 편입됐다. 승전 뒤 미국은 쿠바에서 철수했으며 대신 쿠바 중남부의 관타나모 지역을 해군기지로 사용키로 조약을 맺었다.

이후 1950년대 말까지 양국 관계는 아주 좋았다. 그런데 1959년 피델 카스트로가 친미 정권인 풀헨시오 바티스타를 축출하고 공산화 혁명에 성공하면서부터 적대적 관계로 돌아섰다. 특히 카스트로는 혁명 뒤 10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인 소유 자산을 국유화했고, 이에 반발한 미국이 1960년 쿠바에 대한 금수조치를 취했다.

급기야 1961년 4월에는 카스트로 축출을 위한 피그만 침공 사건까지 발생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미국으로 망명한 1500명 정도의 쿠바인을 규합해 무기를 지원한 뒤 피그만으로 침투시킨 사건이다. 하지만 1500명 대부분이 죽거나 체포되는 등 실패로 돌아갔다.

1962년에는 쿠바 미사일 위기 사건이 일어났다. 쿠바가 소련에 쿠바 내에 미사일을 배치토록 허용하자 이에 미국이 반발, 핵전쟁 위기까지 치달은 사건이다. 결국 소련이 쿠바에서 미사일을 철수키로 하면서 진정됐다.

이후 양국은 근래까지도 사사건건 부딪혀오다 2013년 12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렸던 넬슨 만델라 추모식장에서 조우하면서 해빙의 물꼬를 트게 됐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