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21년 전인 1993년 10월 ‘서해훼리호 침몰 참사’에서 292명이 숨졌다. 사고 원인은 비슷했다. 정부의 승선정원 관리가 부실했고 선박회사는 비용 줄이기에만 급급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1년은 서해훼리호 참사 때와 상반되게 전개됐다. 20여년 전에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극단적 분열과 갈등이 없었다.
지주형(사진)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런 차이의 배경으로 ‘신자유주의’를 꼽았다. 93년의 한국사회에는 지금 같은 유연한 노동시장, 규제완화, 민영화 등이 자리 잡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사고 대응 방식이 정부와 국민, 여야, 여론 분열을 가속화했다”고 말했다.
지 교수는 유족이 정부를 신뢰하지 않는 근원적 이유를 민간 구난업체의 구조 실패와 이에 따른 혼란에서 찾았다. 그는 “정부가 효율성이라는 명분으로 민간에 권한을 넘겼지만 구조는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면서 “세월호 유가족이 이에 ‘반기’를 들면서 사고가 ‘정치화’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고 분석했다. 세월호 침몰 직후 해양경찰청은 직접 구조에 나서지 않고 계약을 맺은 민간업체 ‘언딘’에 구조를 독점할 권한을 줬다.
지 교수는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비판도 정부의 책임을 과거보다 덜 따지게 된 신자유주의적 분위기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했다. 민영화와 규제완화가 당연시되는 분위기 속에 공공안전 관리 실패의 책임을 개인이 나눠 가져야 하는 듯이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유가족이 정부에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것이 부당한 일처럼 취급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지 교수는 세월호 선장과 대다수 선원의 신분이 비정규직이었다는 점에도 주목한다. 그는 “고용이 불안한 상황에서 높은 소속감과 책임감을 기대하기 어렵고, 제대로 된 안전교육과 해양사고 훈련도 받지 못한 상태”라며 “이런 상황이 장기간 한국사회에 자리 잡으면서 구석구석 문제의 요인이 뿌리를 내렸고, 그래서 발생한 사고 이후의 여론 분열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세월호 1년, 갈등을 넘어 치유로] “정부 신자유주의적 대응이 갈등 불러”… 사회학자가 본 세월호 참사
입력 2015-04-13 0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