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포커스-이명찬] 日외교청서 속 한일관계의 본질

입력 2015-04-13 02:20

일본 외무성은 2008∼2014년 외교청서에서 “한국은 자유, 민주주의, 기본적 인권 등의 기본적인 가치를 공유하는 일본에 가장 중요한 이웃 국가”라고 표기해왔다. 그런데 2015년 외교청서에서는 기본적 가치를 공유한다는 표현이 사라지고 “한국은 가장 중요한 이웃 국가”라고 기술하는 데 그쳤다.

이에 대해 국내 여론은 아베 신조 정권의 우경화가 도를 넘어섰다는 비판이 주를 이뤘다. 그렇다면 현재의 한·일 관계는 비정상적이며 그 원인은 ‘역사수정주의자’인 아베 총리에게 있으며, 그가 바른 역사인식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옛날의 정상적인 양국 관계로 되돌아갈 것인가.

아베 정권 바뀌면 양국관계 회복될까

국제정치학자 케네스 월츠는 ‘사람, 국가, 전쟁’이란 책에서 전쟁의 원인으로 첫째 리더십의 성격, 둘째 국가의 성격, 셋째 국가 간 힘의 분포를 제시하고 이 중 국가 간 힘의 분포가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주장했다. 신 현실주의로 불리는 월츠의 이러한 주장은 국가의 행동 패턴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국제정치학계에서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해 왔다.

최근 악화된 한·일 관계의 원인도 월츠의 세 가지 요인으로 찾아볼 수 있다. 첫째, 리더십 요인으로는 ‘역사수정주의자’ 아베의 우경화된 인식이 주 요인이라는 주장이다. 일리가 있다. 그러나 위안부 문제가 악화된 계기는 2012년 노다 총리와 이명박 대통령의 정상회담이었으며, 독도 문제는 아베 정권 이전의 민주당 정권 시절에도 큰 차이가 없었다. 따라서 아베 정권이 바뀌더라도 한·일 관계가 급격히 개선될 가능성이 크지 않아 보인다.

둘째, 국가의 성격이다. 2015년 외교청서는 “전통적인 국가 간 관계에 있어서 이익에 기초한 움직임이 여전히 강고되고, 권위주의 체제 부활 움직임도 보인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렇다면 일본의 주장대로 양국이 ‘기본적인 가치관을 공유’한다면 양국 관계는 회복될까. 이에 대한 대답은 대단히 부정적이다. ‘기본적인 가치관’의 변질론보다 더 심각한 역사인식의 불일치 문제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월츠의 주장대로 국제사회의 힘의 균형에서의 변화가 근본적인 원인이기 때문이다.

최근 동북아 국제정치 불화의 근본적 원인은 중국의 급부상이다. 외교청서는 “중국 등 신흥국이 급속하게 경제 성장을 하여 지금까지의 힘의 균형에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중략) 힘의 균형의 변화는 세계 각지에서 질서의 불안정화를 야기하고 있으며, 기존의 국경을 부정하거나 해양 질서를 어지럽히는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명기했다. 최근 일본의 낯선 모습은 이러한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

2010년 9월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에서의 중국 어선 충돌 사건에서 일·중 양국이 외교전쟁으로 험악하게 부딪혔을 때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일본의 그것을 막 능가하던 시점이었다. 그때까지 중국이 보여주던 ‘도광양회(韜光養晦)’ 외교 노선은 폐기되고 ‘주장하는 외교’ 변경되었다고 세계 여론은 인식했다. 사건 발생 이후 5년이 채 안 된 지난해 중국의 GDP가 일본의 2배를 웃돌고 있다. 중국의 대일 주장은 거침이 없으며, 일본에서 ‘중국 위협론’이 힘을 얻는 이유다.

일본과의 불화 쉽게 해결되기 어려워

최근 일본에서 맹위를 떨치는 ‘혐한론’도 이와 무관치 않다. 경쟁 국가로 성장하여 부담스러운 한국이 ‘기본적인 가치관’을 달리하는 ‘위협적인’ 중국과 역사 문제로 손을 잡고 일본을 공격하는 듯한 모습에 충격을 받은 것이다. 일본은 민주주의 가치관을 공유하는 한국과 손을 잡고 공산당 일당독재 국가인 중국의 급부상을 견제하자고 줄기차게 주장해 왔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국가 간 관계에 있어서 이익에 기초한 움직임이 여전히 강고한 한·중·일 관계에서 일본과의 불화는 쉽게 해소될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데 심각성이 있다.

이명찬 한국국제정치학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