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진애] 슬픔은 이야기함으로써 이겨낼 수도

입력 2015-04-13 02:10

“어떤 슬픔도, 그것을 이야기할 수 있으면, 견뎌낼 수 있다.” 작가의 통찰이자 심리학, 정신학에서 축적된 연구 결과이다. 고통, 후회, 부끄러움, 수치심, 분노, 그리고 깊은 슬픔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비로소 상처가 아물고 새살이 돋으며 그 과정에서 인간성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고 삶을 꾸릴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것이다. 물론 사건의 진실을 마주하는 것은 빠뜨릴 수 없는 기본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사회가 이 깊은 슬픔을 대하는 태도에는 큰 문제가 있다. 아직 9명의 시신도 돌아오지 못했고 세월호 인양을 결정하지도 못했다. 진실을 밝힐 수 있는 특별법을 만드는 데 그리 진통을 겪었는데, 이제 정부가 제정하려는 시행령이 특위 활동을 무력화시킨다고 유가족들은 거부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유가족들의 아픔을 폄훼하고 ‘지겹다’고 얘기하고 ‘보상비, 배상비 받는데 무슨 문제냐, 이제 그만 좀 해라’라고 얘기하는 무자비한 사람들 또한 우리 사회에 있다. 대다수 국민들은 우리 사회의 치유 능력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느냐, 절망감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러다가는 세월호 유가족들과 생존자들의 트라우마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트라우마가 되어버리지 않을까 걱정될 지경이다.

어릴 적 폭력을 겪은 사람들이 치유 과정을 제대로 밟지 못하면 감성 결핍이 심각해지거나 본인 스스로 폭력적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우리 사회는 일제강점기, 징용, 남북 분단, 이산가족, 한국전쟁, 권위주의적 독재시대 등 근현대사를 통해 수없는 폭력을 겪었다. 그 큰 폭력을 겪고도 슬픔을 집단적으로 치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정신이 황폐하고 감성이 무뎌져서 트라우마가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그래서 우리의 치유 역량이 떨어지는가 하는 의문마저 든다.

확실한 것은 우리 사회의 역량은 이 세월호의 슬픔을 국민적 트라우마로 내버려둘 정도로 미숙하지는 않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오직 진실을 마주하는 용기, 무한한 공감 능력이 절실히 필요할 때다. 부디 떳떳이 진실을 밝히고 슬픔을 이야기하며 치유의 과정을 밟자.

김진애(도시건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