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한승주] 세월호 1년, 진실과 망각 사이

입력 2015-04-13 02:30

지난 9일 경기도 용인 수지고 1학년인 친구 아들은 경북 안동으로 수학여행을 떠났다. 학생들은 관광버스에 나눠 탔다. 그리고 그날 오후 친구는 깜짝 놀랄 소식을 들었다. 수지고 학생들을 태운 관광버스가 안동에서 5t 트럭과 충돌했다는 것이다. 순간적으로 많은 생각이 오갔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1년 전 꽃다운 고등학생 250명을 떠나보낸 아픔을 간직한 채 살고 있으니까.

다행히 친구 아들이 탄 버스는 아니었고, 사고버스에 탄 아이들도 가벼운 상처만을 입었다고 한다. 친구는 이런 내용을 ‘밴드’에 올렸다. 천만다행이긴 하지만 막상 나에게 이런 일이 닥치니 참 황당하고 무섭다는 얘기도 했다. 체험학습과 수학여행의 계절, 학부모인 나 역시 남 일 같지 않아 가슴이 철렁했다.

친구의 글에 달린 댓글 중 하나가 유독 마음을 아프게 했다. 의사인 선배는 “아이들 안전에 좀 더 신경을 써줬으면 좋겠는데 오히려 제일 소홀한 것 같아 걱정”이라며 “우리 병원 환자 중 어린이집 차량에 치어서 사망한 아이가 벌써 세 명”이라고 적었다. 차마 믿을 수 없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1년 전 안산 단원고 학부모들 마음도 이랬을 것이다. 아이들이 탄 배는 푸른 고래의 꼬리처럼 가라앉고 있었지만, 처음에는 아이들이 전원 무사히 구조됐다고 했다. 그 얘기만 믿고 아이들을 만나러 진도로 가는 버스에 올랐던 학부모들은 황당한 사실을 접하게 된다. 전원 구조가 아니라 희생자가 있다, 구조되지 못한 학생들이 250명이 넘는다. 그렇게 이별이었다. 따뜻한 말 한마디 나눌 새도 없이 황망히 떠나보내야 했다. 슬픔으로 차곡차곡 쌓인 날이 희생자 수 304명을 훌쩍 넘어 1년이 다 되간다. 지금까지 가족 품에 돌아오지 못한 희생자도 9명이다.

1년이 흘렀다. 그동안 무엇이 바뀌었는가. 많은 말들이 오갔지만 세월호가 왜 가라앉았는지 진상은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 진실은 아직 바닷속에 가라앉아 있다. 세월호는 대한민국의 총체적 부실을 그대로 드러낸 사건이자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통해 대한민국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새삼 알았다. 정부는 국민을 구조해야 하지만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도 실감했다. 침몰된 세월호 인양은 진상 파악의 시작이 될 것이다.

1년 전 우리는 모두 진심으로 울었고, 진심으로 분노했고 원망했다. 무기력과 절망, 죄책감도 느꼈다. 그리고 많은 반성과 결심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근거 없는 낙관주의를 떨쳐버리자는 것이었다. ‘나 하나 원칙을 지키지 않는다고 설마 큰일 나겠어’ 하는 안일함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맡은 일을 원칙대로 성의 있게 하자는 결심이었다. 그 약속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 우리 모두 돌아볼 때이다.

라틴어에서 진실의 반대는 거짓이 아니라 망각이라고 한다. 세월호 1년, 어느새 일상으로 돌아온 우리는 진실과 망각 사이 어디쯤에서 방황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 사건을 잊지 않고 또렷이 기억하는 것이다. 세월호를 잊는다는 것은 또 다른 대형사고를 반복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뜻이기에.

하늘은 눈부시게 푸르고, 거리마다 봄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햇살은 따스하고, 살랑이는 봄바람에 꽃비가 내린다. 서정주 시인은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고 했다. 떠나간 아이들이 많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sjhan@kmib.co.kr

한승주 산업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