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손에 ‘성완종 리스트’란 뜨거운 감자가 쥐어졌다. 검찰은 “수사 단서가 될지 검토해 보겠다. 다만 현실적으로 장애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성완종(64) 전 경남기업 회장이 남긴 ‘금품 메모’만으로 수사 착수를 선언하기엔 정보가 빈약한 데다 공소시효 등 법리적 난관도 많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다만 메모 내용의 파괴력이나 여론의 진상규명 압박 등을 감안하면 수사를 하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야말로 딜레마다.
성 전 회장은 현 정부 유력인사들에게 금품을 제공한 정황이 담긴 메모를 품고 9일 목숨을 끊었다. 그 직전 언론 전화통화에서도 비슷한 주장을 폈다. 그러나 그는 지난 3일 18시간 동안 검찰 조사를 받을 때는 금품 전달 사실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가족들이나 변호인도 몰랐던 내용이라고 한다. 자신을 겨냥한 검찰 수사에 대해 수차례 억울함을 표했던 성 전 회장이 마지막 순간 일종의 ‘역공’을 한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솔직히 (성 전 회장이) 원망스럽다”며 “비자금 수사를 진행 중인 검찰에 와서 얘기를 하던가 해야지, 목숨을 끊으며 난제를 던지면 어떻게 하나”고 말했다.
검찰은 성 전 회장이 남긴 메모를 대검 과학수사부에 보내 필적감정을 하기로 했다. 경향신문 측에 전화통화 녹음파일 제출도 요청할 계획이다. 현 단계에서 유일한 물증인 메모와 육성파일의 증거 진정 확보를 위한 조치다. 다만 증거능력이 인정되더라도 메모 등장 인사들의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난관이 많다.
가장 먼저 따져봐야 할 것은 공소시효 문제다. 성 전 회장은 언론인터뷰에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허태열 전 비서실장에게 금품을 전달한 시점을 각각 2006년 9월과 2007년으로 지목했다. 자금의 성격에 대해서는 ‘경선 자금’ ‘신뢰 관계’ 등으로 표현했다. 불법 정치자금으로 간주한다면 공소시효(당시 기준 5년)가 지나 수사 대상이 안 된다. 자금의 성격을 뇌물로 보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이 적용돼 현재도 공소시효(10년)가 남아 있게 되지만 사람 이름과 액수만 갖고 대가성까지 입증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이완구 국무총리와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의 경우 액수도 없이 이름만 있어 최소한의 단서조차 되지 못한다는 게 검찰 인식이다. 검찰 한 간부는 “메모에 나온 이름이나 금액만으로는 수사를 한다 해도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금품 제공자인 성 전 회장이 이미 사망한 것은 검찰을 더욱 곤혹스럽게 한다. 금품 수사의 핵심인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떤 명목으로 돈을 줬는지에 대한 증언 확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메모에 등장하는 이들이 혐의를 부인하면 이를 반박할 근거를 대기가 쉽지 않다.
검찰 관계자는 “현 상태에서는 아무런 ‘스토리’가 안 된다”며 “성 전 회장 장례절차가 끝나면 메모를 보충할 자료를 구하고, 공소시효가 살아 있는 사안이 있는지 정리한 뒤에야 수사 개시 여부를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자금 전달 현장에 동석한 목격자나 돈 심부름꾼, 현금보관증 등 객관적 증거 자료가 나온다면 수사 물꼬가 트일 수도 있다. 성 전 회장이 정치자금을 건넸던 인물과 구체적 상황 등을 기록한 별도의 ‘장부’가 존재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
[성완종 리스트 파문] 檢의 딜레마… 안 할 수 없는 수사 ‘빈손’ 가능성
입력 2015-04-11 1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