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수사를 받다 9일 자살한 성완종(64) 전 경남기업 회장의 웃옷 주머니에서 ‘금품 메모’가 나왔다. 전·현 청와대 비서실장과 국무총리 등 박근혜정부 핵심 인사 8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성 전 회장이 세상을 등지며 정치권과 검찰을 향해 ‘폭탄’을 던진 셈이다. 전정권의 해외 자원개발 비리 수사가 ‘성완종 리스트’란 돌발 변수에 따라 현 정권 실세들의 불법자금 수사로 방향을 전환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그러나 금품 공여자 사망, 공소시효 문제 등에 막혀 불발탄에 그칠 거란 관측도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임관혁)는 전날 성 전 회장 시신 검안 과정에서 유력 인사 8명의 이름이 적힌 자필 메모 1장이 발견됐다고 10일 밝혔다. 검찰은 “그중 6명의 이름 옆에는 금액도 기재돼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 김기춘 전 비서실장 10만 달러, 허태열 전 비서실장 7억원, 홍준표 경남지사 1억원, 부산시장 2억원,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 2억원, 유정복 인천시장 3억원 등의 내용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실장 이름 옆에는 ‘2006년 9월 26일’이란 날짜도 기록돼 있다. 이완구 국무총리와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 이름도 나오지만 별도의 금액 표기는 없었다.
검찰 관계자는 “메모에 적힌 전체 글자 수는 55자”라며 “수사 단서가 될 수 있을지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우선 필적감정을 통해 성 전 회장이 쓴 게 맞는지 확인키로 했다. 장례 절차가 끝나면 유족과 성 전 회장 수행비서 등을 상대로 조사도 진행할 계획이다.
성 전 회장은 9일 새벽 유서를 남기고 자택을 나온 뒤 경향신문 측에 전화를 걸어 금품 제공 관련 발언을 했다. 공개된 녹음 파일에 따르면 “김기춘 전 실장이 2006년 9월 VIP(박근혜 대통령)를 모시고 독일에 갈 때 10만 달러를 바꿔서 전달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박근혜 후보 캠프의 허태열 전 실장에게도 현금으로 7억원을 건넸다”고 말했다. 메모 속 김·허 전 실장 관련 내용과 대략 일치한다.
당사자들은 일제히 부인했다. 김 전 실장은 “일말의 근거도 없는 황당무계한 허위”라는 입장 자료를 냈다.
김진태 검찰총장은 수사팀에 “메모지 작성 경위 등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을 확인하고 관련 법리도 철저히 검토해 결과를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다만 본격 수사에 대해서는 검찰 내부에서도 회의적 목소리가 높다. 금품 공여자가 사망한 터라 자금 전달 경위, 목적 등 추가 진술 확보가 불가능해 수사 진척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 정치자금법 공소시효(2007년 12월 법 개정 이전 5년, 이후 7년)도 문제가 된다.
‘성완종 리스트’는 정치권에 ‘쓰나미’를 몰고 왔다. 여권은 직격탄을 맞았고,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번 사건을 박근혜정부 최대 ‘정치 스캔들’로 규정했다. 야당 일각에선 벌써 특별검사를 거론하고 나섰다. 공무원연금 개혁 등 국정 과제도 차질이 불가피해 보인다. 4·29 재·보궐 선거에도 영향이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지호일 하윤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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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4-11 02: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