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창작 오페라 우리에게 맡겨봐”… 세종 카메라타의 도전 3년

입력 2015-04-13 02:51
서울시 오페라단 이건용 단장
‘세종 카메라타’를 통해 지난해 본공연으로 만들어진 오페라 ‘달이 물로 걸어오듯’의 한 장면. 서울시오페라단 제공
2013년 ‘세종 카메라타’의 첫 번째 리딩공연에서 배우들이 대본을 보며 연기하는 모습이다. 서울시오페라단 제공
한국의 창작오페라는 대부분 왜 그리 지루할까. 광개토대왕, 선덕여왕, 정몽주, 이순신, 안중근, 전봉준 등 역사 속 위인이나 백록담, 대장경, 선비를 비롯한 지역 문화유산을 소재로 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의미만 강조될 뿐 드라마로서 재미가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일부는 충분한 준비 없이 졸속으로 만들어지는 바람에 완성도마저 낮다.

그런데 위인전 오페라나 문화유산 오페라의 실패로 점철됐던 한국 창작오페라사(史)에 최근 주목할만한 움직임이 나타났다. 2012년 10월 서울시 오페라단에서 오페라 창작을 위해 결성한 ‘세종 카메라타’가 바로 그것이다. 이건용 서울시 오페라단장이 연극계와 클래식계 추천을 받아 극작가 고연옥, 고재귀, 박춘근, 배삼식과 작곡가 신동일, 임준희, 최우정, 황호준 등 8명으로 꾸린 모임이다.

‘카메라타’는 16세기 말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피렌체의 예술 후원자였던 조반니 데 바르디 백작의 살롱에 모였던 시인, 음악가, 화가, 문인, 건축가 등 예술가들의 소그룹을 통칭하던 말이다. 이곳에서 서양예술의 결정체 오페라가 탄생했다. 세종 카메라타는 이를 본떠 이름을 붙였다.

세종 카메라타는 극작가와 작곡가로 4개 팀을 꾸렸고 2013년 리딩(reading) 공연(작품이 완전히 다듬어지기 전에 무대 장치와 의상 없이 미리 선보여 관객 평가 등을 받는 것)으로 4편을 내놨다. 이 중 가장 좋은 평가를 받은 ‘달이 물로 걸어오듯’(고연옥 대본, 최우정 작곡)이 지난해 정식 공연됐다. 참신한 소재와 긴장감 있는 서사, 개성 있는 음악으로 호평이 쏟아졌으며 창작오페라로는 드물게 높은 유료 관객 점유율을 기록했다. 2008년 처음 연극으로 공연됐을 때보다 오페라로 만들어져 완성도가 더 높아졌다는 얘기도 나왔다.

이 단장은 10일 “기존 오페라는 작곡가와 대본가를 선정해 작품 위촉을 맡기는 방식인데, 대체로 작곡가는 언어를 잘 다루지 못하고 대본가는 음악을 잘 이해하지 못해 늘 시행착오를 반복했다”면서 “특히 우리나라에는 좋은 오페라 대본가가 없기 때문에 좋은 창작오페라가 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워크숍을 통해 작곡가와 대본가가 서로를 이해하고 연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물론 세종 카메라타의 워크숍 과정이 평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극작가와 작곡가들이 모두 자신의 분야에서 중견으로 자리 잡은 아티스트인 만큼, 견해차로 충돌을 일으키거나 모니터링 과정에서 자존심에 상처를 입기도 했다. 작곡가 최우정은 “극작가는 함축적인 작곡가의 음악에 맞춰야 하고, 작곡가는 극작가의 언어를 다치게 하지 않는 작업이 만만치 않았다”고 했다.

2013년 첫 리딩 공연 이후 극작가 배삼식이 세종 카메라타에서 빠지기도 했다. 극작가 고연옥은 “서로를 이해하는 지난한 과정을 겪은 후 오페라라는 장르에 대해 더욱 흥미를 갖게 됐다”면서 “올해는 워크숍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지만 앞으로 나의 다른 희곡들도 오페라로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세종 카메라타가 오는 21∼2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두 번째 리딩 공연을 연다. 이번에는 국내에서 보기 힘든 1인 오페라 ‘열여섯 번의 안녕’(박춘근 대본, 최명훈 작곡)을 시작으로 ‘검으나 흰 땅’(박춘근 대본, 신동일 작곡), ‘마녀’(고재귀 대본, 임준희 작곡) 등 3편이 무대에 오른다. 2년 전 리딩 공연의 경우 완성된 희곡을 오페라 대본으로 만들었지만, 이번에는 처음부터 극작가들이 작곡가와 상의해 오페라 대본을 썼다.

이 단장은 “다른 장르의 아티스트들이 협업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열린 마음으로 다른 장르를 받아들였으면 좋겠다”며 “일반 관객은 물론이고 오페라외의 다른 장르 아티스트들도 많이 와 리딩 공연에 대해 조언을 해줬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