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에서 디자인업체를 운영하는 최모(48·여)씨는 올해 중학교에 입학한 둘째 아들의 ‘논문’ 준비를 돕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 간부인 지인을 통해 논문을 지도할 서울 유명대학 교수를 물색하고 있다. 지도 교수가 정해지면 논문 작성에 참여할 아이들도 모을 계획이다. 논문은 과학고 입시용이고, 최종 목표는 ‘의대 진학’이다.
최씨는 “(제가) 극성스러운 강남 아줌마라고요? 이미 카이스트 교수를 섭외해 아이들을 모집 중인 모임도 있어요. 엄마들이 이런 모임에 들어가려고 혈안이 돼 있어요”라고 했다.
한창 기초지식을 배우고 익힐 나이인 최씨 아들이 대학생이나 준비하는 논문에 매달리는 이유가 뭘까. 이런 논문은 어떻게 대학 진학에 도움이 될까.
최씨 아들이 준비하는 것은 ‘R&E(Research and Education) 소논문’이다. 학생 3∼10명이 연구주제를 정해 공동으로 논문 한 편을 완성하는 자기주도형 학습의 한 유형을 일컫는다. R&E 소논문 활동은 최근 강남권과 특목고에서 대입을 위한 필수 스펙으로 떠오르고 있다. 대입 학생부종합전형(옛 입학사정관제)이나 특목고 입시에서 위력을 발휘하고 있어서다. 들어가는 비용 등이 너무 커 비강남권이나 일반고에선 용어조차 생소할 정도로 활성화되지 않았다. 결국 소득에 따라 교육 격차를 벌리는 또 하나의 ‘장애물’이 되고 있다.
◇“논문 한 편에 300만원”=R&E 소논문 활동은 좋은 취지로 시작됐다. 학생들이 관심분야를 스스로 연구해 간단한 논문을 작성하는 경험을 쌓게 한다는 게 목적이었다.
그러나 대입 스펙으로 떠오르면서 변질됐다. 소논문은 과거 입학사정관제로 불렸던 학생부종합전형에 활용된다. 학생부종합전형은 교과성적(내신), 비교과활동, 자기소개서, 추천서, 면접 등을 통해 다양한 활동을 평가한다. 소논문은 비교과활동과 자기소개서, 면접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게 한다.
서울대는 2015학년도 학생부종합전형에서 ‘자기주도적 학업 태도’ ‘전공분야에 대한 관심’ ‘지적 호기심’ 등을 평가 요소로 제시했다. 연세대나 고려대 등도 비슷하다. 소논문은 이런 평가방식에 ‘안성맞춤’이다. 서울 주요 대학의 입학처장 출신인 한 교수는 “면접관들이 소논문 이력을 제시한 학생을 ‘우수한 아이’로 인식한다”고 했다.
소논문을 준비하는 아이들은 대략 세 종류로 구분된다. 특목고 등 학교 자체적으로 동아리 활동을 하는 학생, 강남권 등에서 인맥을 동원해 소그룹을 만든 학생, 마지막으로 사교육에 의존하는 학생이다. 강남권에는 대입·고입용 소논문을 전문적으로 컨설팅해주는 업체 10여곳이 성업 중이다. 가장 규모가 큰 R사는 경기도까지 출장상담을 하고 있다. 이 업체는 “8주 기본 코스에 논문 한 편이 나온다. 비용은 300만원인데 추가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교수급 연구진이 논문 주제를 정해주고, 첨삭은 물론 면접 대비까지 해준다”고 설명했다.
◇그들만의 학생부종합전형=소논문 활동에서 이뤄지는 선행학습은 공교육정상화법(선행학습금지법)의 규제를 받지 않는다. 무분별한 ‘스펙 사냥’을 제한하는 정부 방침으로부터도 자유롭다. 교육부는 교내외 수상실적 등을 학생부에 기재하지 못하도록 했지만 소논문 활동은 예외다. 대학들도 대학별고사(논술·면접 등)에서 고교 교육과정을 넘어서는 내용을 출제하면 입학정원 축소 등 벌칙을 주도록 돼 있지만 “소논문은 규제 대상이 아니다”는 입장이다. 심지어 ‘자기주도형 학습의 모범적 방식’으로 권장할 정도다.
소논문이 각광받는 배경에는 학생부종합전형 확대가 자리 잡고 있다. 학생부종합전형은 2015학년도에 6만619명이었지만 2016학년도에는 6만9043명으로 8000명 이상 늘었다. 전체 대입전형에서는 고교 성적을 위주로 평가하는 학생부교과전형이 학생부종합전형보다 많지만 주요 대학일수록 학생부종합전형에 좀 더 비중을 두고 있다. 여기에다 교육부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학의 대입 선발권 강화’ 주문을 학생부종합전형 확대 지시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학생부종합전형 확대는 서울 강남·송파·서초·양천구 등 이른바 ‘교육특구’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박홍근 의원 분석에 따르면 2015학년도 서울대 수시모집 합격자 중 이 4개 지역 수험생이 184명이나 된다. 5년 전 83명과 비교해 배 이상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중랑·강북·구로구 지역 합격자는 40∼57% 줄었다.
입시 전문가들은 “강남권 학생들이 학생부종합전형을 잘 준비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경기도 부천의 한 진학담당 교사는 “일반고 교사들은 소논문 활동을 도와줄 여력이 안 된다”며 “소논문 활동이 각광을 받고 있는데 특목고 아이들과 부유층 자제들의 전유물처럼 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도경 박세환 기자 yido@kmib.co.kr
[기획] 빈부 따른 교육 격차 이렇게 벌어집니다… 강남에선 ‘R&E 소논문’ 유행
입력 2015-04-11 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