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적 충돌·언쟁 장면 전혀 없어, 경관 거짓말 재확인… 美 ‘흑인 총격’ 새영상 공개

입력 2015-04-11 02:40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 발생한 백인 경관의 비무장 흑인 총격 살해사건과 관련해 총격이 있기 직전 차량 검문과 도주 장면 등이 담긴 추가 동영상이 9일(현지시간) 공개됐다. 시민 제보에 의한 동영상에 이어 이번 영상에서도 물리적 충돌은 물론 언쟁하는 모습조차 보이지 않아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노스찰스턴 경찰 당국이 이날 공개한 4분짜리 순찰차 카메라 영상에는 백인 경관 마이클 토머스 슬레이저(33)가 오른쪽 미등이 고장 났다는 이유로 흑인 월터 라머 스콧(50)이 몰던 검은색 메르세데스 벤츠 승용차를 길가에 세우는 장면이 담겼다. 슬레이저는 벤츠로 다가가 면허증과 차량등록증을 요구하고 몇 마디 말을 주고받은 뒤 순찰차로 잠시 돌아갔다. 그 사이 스콧이 이웃으로부터 구매를 전제로 빌렸다는 자동차에서 내려 도주하는 모습이 잡히고 슬레이저가 그를 뒤쫓는 듯한 소리가 들리면서 영상이 끝난다. 슬레이저가 사건 경위서에서 주장한 난투극이나 테이저건(전기충격 총) 탈취 사건이 발생할 수 있는 제압 과정은 담기지 않았다.

슬레이저가 스콧에게 총격을 가하는 영상을 촬영해 공개했던 페이딘 산타나는 이날 CNN방송에 출연해 사건 촬영 당시 슬레이저의 동료 경관이 다가와서 영상을 찍지 말 것을 강요했다고 폭로했다. 산타나는 “바로 그 점 때문에 내가 그들의 행동이 잘못된 것이라고 하는 것이며, 내가 모든 것을 증언하는 이유다”라고 강조했다.

공개된 영상을 통해 정당방위였다는 슬레이저의 거짓말이 드러났지만 몇 가지 의문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MSNBC방송은 슬레이저가 생명의 위협을 느끼지 않았는데도 왜 조준사격을 했는지에 대한 근본 물음과 함께 스콧이 쓰러진 후 슬레이저와 그의 동료 경관이 왜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았는지, 슬레이저가 왜 총을 쏜 지점으로 다시 돌아가 어떤 물건(테이저건 추정)을 집어온 뒤 스콧의 몸 위에 올려놓았는지 등의 의문을 제기했다.

스콧을 애도하고 슬레이저의 ‘야만적’ 살인을 규탄하는 목소리도 이어지고 있다. 흑인 인권단체인 ‘블랙 라이브즈 매터(Black Lives Matter·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성명을 통해 긴급 시의회 소집과 시민조사위원회 구성을 촉구하면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시위를 계속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미유색인종지위향상협회(NAACP) 노스찰스턴 지부의 도트 스콧 회장도 “시민이 제보한 동영상이 없었다면 피상적인 수사를 통해 (정당방위였다는) 슬레이저의 주장이 진실로 둔갑하고 스콧이 범죄자로 묘사되지 않았겠느냐”고 반문했다. 대선주자들도 나섰다. 민주당 유력 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전날 트위터에 “너무 가슴 아픈 사건인 동시에 또 너무나 익숙한 사건”이라고 꼬집었고, 공화당 잠룡인 벤 카슨과 랜드 폴 상원의원도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끔찍한 비극’이라고 비판했다.

일부 언론들은 이번 사건이 백인 경관의 비무장 흑인 총격 살해란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 지난해 ‘퍼거슨 사태’에 비해 비교적 차분히 전개되고 있는 것이 노스찰스턴시와 경찰 당국의 신속한 대응 때문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당국은 영상 공개 직후 슬레이저를 살인 혐의로 체포·해임한 뒤 시장과 경찰청장이 직접 피해자 가족을 찾아가 사과하는 등 발 빠르게 대응했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