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 테이트모던미술관의 초대형 전시실 터바인홀(Turbine Hall)에서 전시를 하는 것은 전 세계 모든 중견 미술가들의 로망이다. 옛 화력발전시설을 개조해 1∼5층을 하나로 관통시킨 이 곳에서의 전시는 1년에 딱 한 명에게만 주어진다. 올해 터바인홀의 영광은 멕시코 아브라암 크루스비예가스(47·사진)에게 돌아갔다.
크루스비예가스의 10월 런던 전시에 앞서 서울에서 그의 진면목을 볼 수 있게 됐다. 종로구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자가해체 8: 신병(神病)’전에서다. 양현미술상(2012) 수상, 광주비엔날레(2012) 참여 등으로 국내에 알려지기는 했지만 한국 개인전은 처음이다.
전시장을 들어서면 뜨악할 수 있겠다. 부서진 벽돌, 살이 부러진 우산, 부러진 상다리, 닳아빠진 빨래판, 소쿠리, 낡은 소파, 꽃무늬 장판, 슬레이트 지붕 조각, 쓰다만 청 테이프…. 2층 전시장을 가득 채운 쓰레기들의 정체에 작가가 지향하는 바가 숨어 있다. 서울의 북아현동, 상도동, 녹번동 등 모두 재개발 철거 현장에서 수습한 잔해들이다. 기존 주민들이 밀려난 이들 재개발지구에는 대규모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다. 작가가 “건축이 아니라 괴물”이라며 자본주의에 야유를 퍼붓는 이유다.
크루스비예가스는 가브리엘 오로즈코 등 일군의 작가와 함께 1980∼90년대 멕시코시티에서 일어난 미술 운동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다. 이들은 ‘라틴 아메리카 판 YBA(Young British Artists)’에 비유된다. YBA는 80년대 골드스미스 대학을 중심으로 일어나 데미안 허스트 같은 현대미술 스타를 탄생시키며 영국 현대미술의 부흥을 가져왔다.
YBA가 상업적 지향성을 가졌다면 크루스비예가스 일파의 미술은 사회 참여적이다. 그가 2012년부터 로스앤젤레스, 멕시코시티, 파리 등지를 돌며 진행해 온 ‘자가해체’ 시리즈의 8번째가 되는 이번 한국 전시도 그런 맥락에서 구현됐다.
쓰레기들은 해체의 산물이지만 이 곳에서 전시되며 새롭게 구축된다. 제 용도를 잃은 낡은 깃대 같은 물건이 중앙에 서 있고 이를 중심으로 폐품들이 동심원을 그리듯 구불구불 배치되어 있다. 역시 예술가다. 무질서하고 즉흥적으로 늘어놓은 것 같은데도 사물과 사물이 연결되는 방식에서 긴장감과 조형성이 느껴진다. 전시 제목을 강신 체험 현상인 신병(神病)으로 붙인 것도 이런 변신의 의미를 담기 위해서다. 배은아 객원 큐레이터는 19일 “쓸모없는 사물들에 전혀 새로운 가능성이 부여되고 있다”며 “작가의 개입은 사물이 한 존재에서 다른 존재로 탈바꿈하는 통과의례인 셈”이라고 말했다.
그의 작품 세계는 사회·정치·경제·역사적 조건 속에서 만들어지는 개인의 정체성과 자아의 구축과정을 묻는다. 왜 그는 재개발과 집에 관심을 갖는 걸까. 1층의 비디오 작품이 답이다. 그는 멕시코시티 남쪽 화산암 지역에서 성장했다. 부모는 그곳 무허가 땅에다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돌로 집을 지었다. 아이들이 자라며 방이 늘기도 했다. “이 부근엔 정말 아무것도 없었어요. 이후 조금씩 사람들이 들어와 집을 짓기 시작했지요.” 당시를 회상하는 부모를 각각 인터뷰해 두 개의 영상에 담았다.
어떤 공간의 사물이든 기억을 갖고 있다. 그런 사물의 기억을 존중하는 그의 전시 방식은 3층에 집약돼 있다. 전시 공간을 넓히기 위해 한쪽의 사무실을 헐게 됐는데, 작가는 원래 기둥을 철거하지 않은 채 그걸 전시 작품의 하나로 내놓았다. 작가의 유년시절 집에 대한 기억을 영상, 사운드, 퍼포먼스 등으로 풀어놓는 3층 전시장은 휑해 보이지만, 그런 사연을 듣고 나면 가슴이 따뜻해진다. 7월 26일까지(02-739-7098).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전시장 가득 채운 재개발 건축 쓰레기들… 자본주의에 야유 퍼붓는 사회 참여 작품
입력 2015-04-20 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