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죽음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겨우살이를 준비하면서도 죽음은 준비하지 않는다.” 톨스토이가 한 말이다.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은 죽음을 향한 존재”라고,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죽음의 공포는 당연하지만 극복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사마천은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새털보다 가볍다. 죽음을 사용하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그런가 하면 스티브 잡스는 “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이라고 단언했다.
역사에 이름을 남길 만한 많은 인물들이 죽음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에 대해 이런저런 말들을 남겼다. 죽음과 삶의 관계, 죽음과 대면했을 때의 자세, 예정된 죽음을 향한 삶의 태도…. 죽음의 질(質)을 얘기하는 것인데, 이를 넘어 죽음의 질을 높이지 않으면 결국 삶의 질도 높아지지 않는다는 점을 일갈하는 것 같다. 요즘 품위 있는 죽음, 웰다잉(well-dying) 같은 말들이 회자된다. 모두가 코앞의 현실에만 바빴지 죽음의 품격에 무관심했었다는 뜻일 게다.
20년 가까이 말기 암 환자들을 치료하며 삶의 아름다운 마무리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온 윤영호 서울대 의대 교수는 우리나라를 “가장 비참한 임종을 맞는 나라”라고 칭한다. 무의미한 연명치료, 편안한 가족이 아니라 이름모를 기계와 호스에 둘러싸인 채 맞는 죽음, 돈으로 사는 임종의료의 현실 등등은 죽음의 질을 현저히 낮춘다. 사나톨로지(thanatology)라는 학문이 새로이 주목 받는단다. 죽음학, 임종학으로 불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인류학 종교학 의학 철학 심리학 등 다양한 관점에서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연구하는 일종의 통섭 학문이다. 결국 ‘품위 있는 죽음’을 생각해보고 제시하는 게 목표다.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사전의료의향서를 쓰는 사람이 조금씩 늘고 있다고 한다. 죽음이 다가왔을 때 인공호흡,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등 무의미한 연명의료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자신의 의사를 표현한 문서다. 사전의료의향서를 쓴다는 것 자체가 죽음의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한 번쯤 조망해보는 기회도 된다. 존엄사와 함께 삶의 의미도 되새겨주지 않을까.
김명호 논설위원 mhkim@kmib.co.kr
[한마당-김명호] 사전의료의향서
입력 2015-04-11 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