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우 그림산책] 회화의 도약 - 찢고 엮음의 누아주 페인팅

입력 2015-04-11 02:07 수정 2015-04-11 15:07
신성희의 'MICROCOSME'.
경기도 가평의 설악 설곡리에 ‘생명의 빛 예배당’이 세워지고 그 준공 기념으로 고(故) 신성희(申成熙·1948∼2009) 화백의 전시회 ‘Nouage-엮음의 공간’(2014. 6. 2∼7. 31) 개막식이 있었다.

예배당의 공간 디자인과 그 구성물에 놀랐다. 사방이 유리로 되어 있어 빛이 환하게 들어오는데, 천장과 벽은 잘라서 세우고 붉은 통나무로 이루어져 있었다. 예술과 예배가 통합된 빛과 은총의 융합 세례였다.

러시아 연해주에서 기증해 온 수령 400년이 넘은 홍송 834그루가 이 예배당 건축자재로 쓰였다. 세워져 이어진 통나무들은 마치 부활한 생명들이 하늘을 향하여 날아오르는 듯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을 생각나게 할 만큼 역동적이기도 했다.

예배당 설계자는 프랑스 베르사이유 대학 건축학과 신형철 교수이다. 전시 작가는 설계자의 아버지인 신성희 화백. 건축을 이끌어온 홍정길 남서울은혜교회 원로목사는 신 화백의 친구로 결혼식에서 축가를 불렀고, 그의 아들 신 교수의 결혼식 때 주례를 맡았다. 신 교수는 12세 때 예배당을 한번 짓고 싶다는 서원을 하나님께 드렸는데, 건축과에 진학한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고 한다.

신 화백은 1980년 프랑스로 건너가 2009년까지 파리에서 붓을 잡았다. 29년간의 파리 체류, 아니 그의 인생 모두는 예술의 진실, 회화의 본질을 찾기 위한 온 몸의 투척이고 화혼의 불사름, 고난과 환희의 역정이었다.

그가 끊임없이 던지는 질문은 ‘회화란 무엇인가’였으며 그의 작업 과정은 답을 찾기 위한 창조적 자기 소진이었다. 사실 회화란 평면 위에 그려진 일류전(illusion), 허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형상이 있는 듯 환각(?)을 일으키지만 만져보면 기실 캔버스 평면일 따름이다.

그의 작업은 어떤 변화를 거쳤을까. 70년대 초에는 초현실주의적 표현주의 형상화로 화가의 길을 나섰다. 중반부터 실물 마대 위에 다시 마대를 그리는 극사실적 단색화 회화를 시도, 이는 실제의 마대 위에 회화적 마대를 그림으로 실제와 환각을 공존시키려는 실험이다.

파리로 간 뒤에는 채색한 판지를 손으로 찢어 화면에 붙이는 콜라주 작업, 90년대 중반까지는 채색한 캔버스를 길이로 잘라 박음질하여 이어 붙인 작업이었다. 96년 이후 드디어 그가 도달한 경지가 ‘누아주’ 페인팅이다. 누아주란 엮음, 맺기, 잇기 등의 뜻으로 붙이기의 콜라주와 구별된다. 그리고 찢고 엮어서 3차원의 부조적 입체면을 이루기에 서울시립미술관장 김홍희는 이를 ‘조각적 회화, 회화적 조각’이라 부른다. 평면회화의 한계를 넘어선 실상, 감흥의 극대화에 성공한 셈이다.

신 화백은 작업노트에서 이렇게 썼다. “나의 작업은 찢어지기 위하여 그려진다. 그리고 찢는다는 것은 이 시대의 예술에 대한 질문이며, 그것이 접하고 묶여지는 것은 곧 나의 답변이다.”

‘MICROCOSME’는 그 고난의 역정을 거쳐 도달한 환희와 부활, 생명의 결정체이다. 그는 예술가의 창조적 고뇌의 길은 은총이자 아픔임을 극명히 보여준다. 아버지의 ‘누아주’와 아들의 건축은 엮음의 측면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으니 그 연속성이 또한 놀랍지 않은가.

(겸재정선미술관장·경희대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