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전 회장 사망] 억울함 호소? 주변 불똥 확산에 압박감? 혼자서 감당?

입력 2015-04-10 03:00 수정 2015-04-10 10:53
영장실질심사가 예정돼 있던 9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성완종(64) 전 경남기업 회장의 유서에는 “나는 혐의가 없고 결백한 사람이다” “어머니 묘소에 묻어 달라”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8일에도 기자회견을 자처했고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다. 경남기업과 변호인단의 만류에도 본인의 명예회복을 위해 기자회견을 강행했다고 한다.

성 전 회장은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MB맨으로 잘못 인식되는 바람에 ‘표적수사’의 대상이 됐다는 인식을 드러냈다. “왜 제가 자원외교(수사)의 표적이 됐는지, 왜 있지도 않은 일들이 사실인양 부풀려졌는지 이유를 모르겠다”며 눈물을 쏟았다. 이런 정황을 고려하면 극단적 선택에 이르게 된 요인은 감당하지 못할 억울함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고립무원 상황의 좌절감이나 스트레스가 배경이라는 관측도 있다. 평생 일궈온 기업은 상장폐지를 눈앞에 두게 됐고, 그는 경영권을 잃은 데다 사법처리까지 앞둔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2004년 자유민주연합에 불법 정치자금 16억원을 제공한 혐의로 구속됐던 전력은 다시 수감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증폭시켰을 개연성이 높다.

실제로 검찰 수사 착수 이후 성 전 회장은 친분이 있는 정치권 인사들에게 면담을 요청하고 구명을 호소했다. 하지만 뚜렷한 지원을 약속받지 못했고, 이 역시 자신이 ‘MB맨’으로 오해됐기 때문이라고 여겼다고 한다. 기자회견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허태열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굳이 언급한 것 역시 MB맨 오해를 벗고 구명을 요청하는 메시지였을 수 있다.

한편에서는 주변 인물로의 수사 확대에 대한 압박감이 극단적인 선택을 낳았다는 해석도 나온다. 검찰은 성 전 회장의 횡령 자금이 정관계 로비로 이어졌는지, 광물자원공사와 부당한 공모를 했는지까지 강도 높게 수사할 방침이었다. 이러한 수사들은 완전히 마쳐지지 못하게 됐다. 많은 의혹을 자신이 ‘안고’ 가려 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급격한 심경 변화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는 의구심도 제기된다. 기자회견 후 밤새 성 전 회장에게 영향을 준 또 다른 외부 요인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해석이다. 성 전 회장은 기자회견 당시만 해도 “반드시 명예회복을 하겠다”며 수사 대응 의지를 보였었다.

성 전 회장은 자수성가한 기업인이자 정치인이다. 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 4학년 때 중퇴하고 신문배달 등을 하며 야간학교를 다녔다. 1970년대부터 건설업계에 뛰어들었으며 서산토건 대아건설에 이어 2003년 경남기업을 인수하며 성공한 사업가로 자리매김했다.

2003년 김종필 당시 자유민주연합 총재의 특보단장을 맡았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지원했고,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자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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