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성완종(64) 전 경남기업 회장은 자수성가한 기업인이자 정치인이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 4학년 때 중퇴했다가 신문 배달과 약국 심부름을 하며 야간학교에서 중·고교 공부를 했다. 막노동과 운수중개업 등으로 밑천을 마련해 1970년대부터 건설업계에 뛰어들었으며 서산토건, 대아건설에 이어 2003년 경남기업을 인수하면서 성공한 사업가로 자리매김했다.
이를 기반으로 정치권에도 발을 들였다. 2003년 자유민주연합 총재특보단장을 맡아 김종필 당시 총재를 보좌했다.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지원했다. 그해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자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자문위원으로도 잠시 활동했다. 불법 정치자금 수사(2004년)와 행담도 개발비리 사건(2005년)에 연루돼 두 번 유죄가 확정됐지만 모두 대통령 특별사면을 받았다. 그는 2012년 19대 총선에서 자유선진당 후보로 충남 서산·태안에 출마해 ‘4수’ 만에 당선됐다. 그러나 공직선거법 위반죄로 지난해 6월 벌금 500만원이 확정되면서 의원직을 상실했다. 그 사이 경남기업은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빠져 지난 7일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성 전 회장은 검찰 수사에 대한 항변이나 억울함 토로 차원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수 있다. 영장실질심사를 하루 앞둔 8일 기자회견을 자처해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다. 자신이 ‘MB맨’으로 잘못 인식되는 바람에 수사 표적이 됐다는 인식도 드러냈다. “왜 제가 자원외교의 표적이 됐는지, 왜 있지도 않은 일들이 마치 사실인 양 부풀려졌는지 이유를 모르겠다”며 눈물을 쏟기도 했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극도의 좌절감이나 스트레스를 느꼈을 거란 해석도 나온다. 성 전 회장은 평생을 일궈온 기업의 경영권을 잃은 데다 사법처리를 앞둔 고립무원 상태였다. 2004년 자유민주연합에 불법 정치자금 16억원을 제공한 혐의로 구속됐던 전력은 다시 수감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증폭시켰을 개연성이 높다. 더군다나 그의 정관계 로비 의혹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가 예고됐었기 때문에 주변 인물로의 수사 확대에 대한 압박감이 컸을 수 있다.
다만 기자회견 때 “어머님 영전 앞에서 떳떳한 아들이 되겠다고, 반드시 명예회복을 하겠다고 다짐했다”며 수사 대응 의지를 보였다는 점에서 밤사이 급격한 심경 변화를 불러온 외부요인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낳고 있다. 경찰은 자살 이유와 경위 등을 확인하기 위해 성 전 회장의 휴대전화 통화내역 분석에 들어갔다.
지호일 이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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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4-10 02: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