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64) 전 경남기업 회장의 갑작스러운 자살로 검찰은 충격에 빠졌다. 해외 자원개발 비리 수사의 첫 단추부터 어긋나게 된 데다 여당 국회의원을 지낸 핵심 피의자가 사망한 것 자체가 적잖은 정치적 부담이 될 전망이다.
검찰은 이명박정부의 자원외교 관련 각종 의혹에 칼을 들면서 첫 대상으로 경남기업을 택했다. 경남기업이 재무 상태를 속여 정부의 성공불융자를 타낸 구체적 정황이 나왔기 때문이다. 자원개발 사업의 특성상 에너지 공기업 전현직 사장의 배임 혐의를 곧장 입증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검찰은 성공불융자 부정수급 수사를 지렛대로 삼기로 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임관혁)는 지난달 18일 경남기업과 성 전 회장 자택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이어 지난 6일 성 전 회장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250억원 횡령과 800억원 사기대출, 9500억원대 분식회계 혐의가 적용됐다. 이번 수사에서의 첫 구속영장이었다.
검찰은 성 전 회장을 구속한 뒤 경남기업과 한국광물자원공사 간 뒷거래 의혹으로 수사를 확대할 계획이었다. 광물자원공사가 마다가스카르 암바토비 니켈광산 개발 사업에서 경남기업에 특혜를 줬다는 의혹도 이번 주부터 수사가 본격화된 상황이다. 검찰은 이미 김신종(65) 전 광물자원공사 사장을 출국금지 조치하고, 그의 주변 계좌를 추적 중이다. 성 전 회장으로부터 유의미한 진술을 받아내는 것이 시급한 단계였다.
그러나 성 전 회장이 영장실질심사 당일인 9일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수사에 심각한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경남기업 최고 책임자가 사망해 경영 비리에 따른 법적 책임을 물을 당사자가 없어진 데다 광물자원공사나 금융 당국으로 이어지는 핵심 고리가 끊겼기 때문이다. 그간 제기된 의혹 중 상당 부분이 ‘미제’로 남을 가능성도 커졌다. 검찰 관계자는 “고인과 관련된 수사가 진행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겠느냐”며 “오늘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성 전 회장에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더 들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자원개발 비리 수사의 첫 단계인 성 전 회장 신병 확보가 불가능해지면서 석유공사, 가스공사 등 에너지 공기업 관련 수사도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검찰은 “자원개발 비리는 국가재정이나 국민경제에 큰 부담을 주는 사안이어서 흔들림 없이 수사를 계속하겠다”며 수사 당위성을 강조했지만 곤혹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특히 자원외교와 포스코 비자금 의혹 등 검찰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 중인 사정 작업이 이명박정부 시절 인사들을 겨냥한 표적수사라는 정치적 논란도 거세질 수 있다. 성 전 회장도 8일 기자회견을 자처해 “나는 ‘MB맨’이 아니다”고 항변했었다.
성 전 회장 잠적 직후부터 비상근무체제로 행방 추적과 대책 마련에 분주했던 검찰은 사망 소식에 “불행한 일이 발생해 안타깝다”고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수사를 지휘하는 최윤수 서울중앙지검 3차장은 “아침부터 발견될 때까지 살아있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하루를 보냈다”고 했다. 검찰은 조만간 성 전 회장에 대해 ‘공소권 없음’ 처분을 내릴 예정이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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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4-10 02:00 수정 2015-04-10 1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