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은 지금 ‘랭킹 리스트’ 경쟁 중] 나도 ‘호모랭킹쿠스’?

입력 2015-04-25 02:21

요즘 내로라하는 해외 유명 외신 매체들은 ‘랭킹 리스트(Ranking List)’ 경쟁이 한창이다. 대학 랭킹이나 나라별 각종 통계 순위는 랭킹 축에도 못 낀다. 요즘은 일상생활이나 정보, 시사와 관련된 랭킹이 대세다. 가령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해외 여행지 50선’이나 ‘세상에서 가장 멋진 호텔 욕실 10곳’, ‘아내나 남편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좋은 방법 10가지’ 등과 같다.

미국의 인터넷 언론인 ‘허핑턴포스트’가 이런 식의 랭킹 관련 기사들로 인기를 모으면서 주류 언론으로 부상하자 지금은 거의 대부분 매체들이 눈길이 가는 랭킹 리스트를 메인 화면에 걸어놓고 있다.

사이트별로도 특색이 있어 영국 BBC방송은 여행 관련 랭킹이 유명하고, 미국 일간지 USA투데이는 시사 관련 랭킹 아이템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는 것쯤은 알아야 좋은 정보를 캐낼 수 있다. 아메리칸키닷컴(amerikanki.com) 같은 사이트는 수백 가지 랭킹을 선보이는 랭킹 전문 사이트로 자리 잡았다.

왜 주류 매체부터 신생 매체까지 다들 랭킹에 몰두하고 있는 걸까. 이유는 분명하다. 네티즌들이 많이 찾기 때문이다. 그럼 사람들은 왜 랭킹에 주목하는 것일까.

사실은 우리가 그동안 알게 모르게 ‘호모랭킹쿠스’로 진화했는지 모른다. 대학 순위나 서울대 많이 가는 고교 순위, 인기 많은 어린이집 순위, 취업하고 싶은 기업 순위, 댓글 많은 제품 순위, 올림픽 메달 순위, 국제축구연맹(FIFA) 순위, 살기 좋은 아파트 순위, 잘 팔리는 과자 순위 등등 세상이 온통 순위로 돌아가고 있다.

순위가 자주 활용되는 것은 뭔가를 한눈에 쉽게 파악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순위를 보면 나라든 학교든 물건이든 ‘견적’이 나오는 것이다. 세상은 점점 복잡해지는데 바쁜 현대인에게는 순위만큼 편한 게 없다. 냉장고를 살 때 복잡한 사양을 일일이 비교하느니 롯데하이마트에서 가장 잘 팔리는 냉장고 순위를 살펴보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순위에는 아울러 ‘원초적 경쟁심’이 깔려 있다. 남보다 좋은 것, 최고의 것, 최신의 것을 향유하고 싶은 욕구가 있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남들이 좋아하고 즐기는 것이 뭔지를 파악해 남들보다 뒤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순위에 천착하는 경향이 있다. 즉 동시대인들의 관심사를 반영해주는 프리즘 역할을 랭킹 리스트들이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동시대인들의 관심사를 통해 사업 아이템을 얻어내기도 한다. 랭킹을 보면 돈이 보이는 것이다. 사람들이 검색을 많이 하는 랭킹을 통해 요즘 어떤 여행지가 뜨는지, 어떤 먹거리를 즐기려는 건지, 어떤 물건들에 관심이 높은지를 파악해 남보다 한발 앞서 관련 상품을 내놓으면 히트할 수 있다. 특히 해외에서 눈길을 끄는 리스트들은 우리 사회가 미래에 반복해 검색할 수도 있는 것들이다.

최근 들어서는 벌어진 현상에 대해 순위를 매기기보다 선제적으로 ‘랭킹 만들기’도 급증하고 있다. ‘봄날에 집안 분위기를 바꾸기 좋을 만한 손꼽히는 생활 아이템 20선’ ‘가족 단위로 놀러가기 좋은 서점 10선’ 같은 식이다.

생활에 긴요한 랭킹 리스트를 찾아내면 그 자체가 매출을 일으키고 또 트렌드를 형성하게 된다. 그래서 누가 그랬다던가. “좋은 랭킹 하나, 열 영업사원 안 부럽다”고.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