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서윤경] 야구장에서 안전인식 엿보다

입력 2015-04-10 02:20

지난달 28일 프로야구가 개막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프로야구 출범 34년 만에 10구단 체제로 치러지는 올해 처음 800만 관중 시대를 열 것으로 내다봤다. KBO의 기대대로 매 경기 많은 야구팬이 경기장을 찾고 있다.

그런데 예전과 달라진 풍경이 있다. 경기장마다 출입구에 설치된 생소한 기구다. 공항에서 기내 반입이 가능한 가방의 크기를 측정하는 것과 흡사했다. 관중들은 자신의 가방을 이 기구에 대고 크기를 쟀다. 자신의 가방이나 짐이 기구보다 크면 일행과 짐을 나눠 사이즈를 줄인 뒤에야 입장했다.

KBO에서 올 시즌부터 도입한 ‘SAFE 캠페인’이 만들어낸 모습이었다. KBO는 경기장에 들어갈 가방의 개수와 크기를 제한했고 1ℓ 이상의 페트병이나 캔에 들어간 음료, 주류 반입을 금지했다. 소주는 크기에 상관없이 아예 금지 물품이 됐다. 캠페인 시행을 두고 야구팬들은 반발했다. 야구가 스포츠를 넘어 엔터테인먼트로 자리 잡은 상황에서 현실감 떨어지는 규정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었다. 야구장은 이미 직장인들에겐 회식 장소, 가족들에겐 나들이 장소가 됐다. 그런데 야구장에 음식물 반입과 가방 개수를 제한한다면 누가 야구장을 찾겠느냐는 것이다.

KBO 관계자는 “경기장 내에서 매년 안전사고가 일어나면서 이 같은 규정을 마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해 관중석에서는 휴대용 가스버너에 오징어를 구워 먹다 화재가 발생하는 등 크고 작은 사고가 있었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다. “세월호 사고 이후 사회적으로 안전을 강조하는 분위기도 SAFE 캠페인을 마련한 이유 중 하나”라고 했다.

오는 16일이면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큰 상처를 준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지 꼭 1년이 된다. 그날 이후 대한민국은 달라졌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지키지 못했다며 자성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산업 현장은 물론 문화, 체육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안전’을 외쳤다. 하지만 말뿐이었다. ‘안전’을 이유로 규제만 만들어졌을 뿐 여전히 승객을 태운 KTX는 청테이프를 붙인 채 달리고 있고, 사람들이 걷고 차들이 달리는 도로는 꺼지기 일쑤다.

취재의 대상으로 본 SAFE 캠페인이 불편하게 보인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이 캠페인은 대한민국 사람들이 ‘안전’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여과 없이 보여줬다. KBO는 규제만 만들었지 감시의 기능은 하지 않았다. 구장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손을 놓고 있었다. 오히려 오해거리를 만들어 반발만 키웠다. 일부 야구팬들은 외부에서 반입할 수 없는 음식을 구장 내 매점에서는 구입할 수 있는 것을 두고 매점 운영수익으로 돈을 벌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규제를 제대로 실행하려고 했다면 이 같은 불필요한 오해는 만들지 않았어야 했다.

실행에 옮겨야 할 구단이나 시민들도 캠페인을 애써 모른 척했다. 한 구단 관계자는 “시행 초기라 반발이 극심하다. 계도기간이라 생각하고 유연하게 적용 중”이라고 해명했다. 관중들도 출입구에 반입 금지 품목과 규정이 적혀 있지만 따르지 않았다. 혹여 입장을 막으면 거세게 항의했다. SAFE 캠페인을 보면서 KBO는 안전이라는 이름으로 각종 규제를 만든 행정기관과 기업, 관중과 구단은 규제를 실천해야 할 시민들과 오버랩됐다.

그리고 응원 소리 가득한 야구장에서 세월호 사고 1년을 앞두고 모두가 이해할 합리적인 안전 대책은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정답은 아니지만 안전은 강제의 대상이 아니라 각자의 손해를 감수하며 자발적으로 실천해야 이룰 수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윤경 문화체육부 차장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