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구한 학생들이 세월호의 아픔을 딛고 잘 살아가길 바랄 뿐입니다.”
남수현(63) 충청대 치위생과 교수는 세월호 사고로 목숨을 잃은 고(故) 남윤철(35) 교사의 아버지다. 남 교사는 세월호가 침몰하던 마지막 순간까지 배에 남아 학생들을 구조하다 물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남 교사는 객선 피난비상구 쪽에 있어 충분히 대피할 수 있었으나 몸에 물이 차오르는데도 제자들의 탈출을 일일이 챙기며 선내에 끝까지 남았다.
충북 청주에서 27년간 치과를 운영했던 남 교수는 2007년 직장암 수술 후 대학 교단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남 교수와 그의 아들은 2008년 3월 동시에 교수와 교사로 임용돼 ‘교육자 집안’이 됐다. 지금은 남 교수만 학생들 앞에 서게 됐다. 그는 사고가 발생하기 3일 전 아들이 혼자 살던 집에서 오붓하게 저녁식사를 했다. 타지에서 홀로 생활하던 아들에게 따뜻한 밥을 차려주고 싶은 마음에 안산으로 향했다. 헤어지면서 매주 올라오겠다는 약속도 했다. 지금은 호주에서 지내던 딸이 아버지 곁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 제자들과 수학여행을 떠나는 아들에게 하찮은 일에 목숨을 걸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아들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사랑하는 제자들을 위해 의미 있는 죽음을 택했다. 위기의 순간에서도 사랑과 헌신의 모습은 더욱 빛났다. 자신보다 제자를 먼저 생각한 아들의 의로운 죽음이 1년이 지난 지금도 남 교수의 가슴을 시리게 한다.
의인이 떠난 지 1년
지난 7일 오후 충청대에서 만난 남 교수는 아들의 희생정신과 제자 사랑을 마음속 깊이 느끼고 있었다. 남 교수는 “아들의 희생과 세월호 침몰이 안전한 사회를 구축하는 데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고 말문을 열었다.
남 교사는 첫 부임지였던 안산 대부중학교에서도 가출한 제자들을 찾아다니느라 자정이 넘어서야 귀가했었다. 다문화가정이 많은 안산 지역에서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대학에 편입해 한국어 교사 자격증을 딸 준비를 하기도 했다.
남 교수는 지난 1월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의 한 교수에게서 아들의 면담자료를 받았다. 남 교사가 교직생활 7년차였던 2013년 이 대학 한국어문화학과 3학년에 편입한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안산 지역 다문화가정과 외국인 근로자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이 대학 교직원과 학생들은 정성을 모아 위로금을 전달했다. 남 교수는 위로금 전액을 도로 ‘남윤철 장학기금’으로 학교에 기탁했다.
남 교사의 모교에는 ‘남윤철 강의실’이 생겼다. 국민대는 남 교사의 희생정신과 제자 사랑을 기리기 위해 영어영문학과 학생들이 수업을 듣는 북악관의 한 강의실을 남윤철 강의실로 지정하고 10명의 학생에게 장학금을 전달했다. 장학금은 교직과정 이수 중인 학부 재학생 가운데 생계가 어려운데도 봉사정신이 투철하고 적극적으로 생활하는 학생에게 지급된다. 대학은 남 교사의 고귀한 희생과 제자 사랑의 참 모습을 기억하면서 고인이 못다 이룬 꿈을 후배들이 이어갈 수 있도록 돕겠다는 뜻을 전했다.
불신의 골은 여전
“세월호 참사는 물질만능주의에 매달리고 생명보다 돈을 중시하는 한국사회의 자화상입니다. 물질만능주의로 흘러가는 사회를 사람 중심으로 바꿔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남 교수의 말에선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깊은 불신의 골이 느껴졌다. 사고 후 세월호의 무리한 화물 적재와 증개축, 선원들의 무책임한 조치, 초동 대처 실패 등 사회의 해묵은 병폐들이 모조리 드러났는데도 이후 바뀐 게 없기 때문이다. 관피아 논란에도 특정계층의 낙하산 인사는 근절되지 않았고 세월호는 1년째 차가운 진도 바닷속에 가라않아 있다.
남 교수는 “1년 전 유족과 국민들은 정부가 모든 일을 책임지고 사태를 조속하게 해결해줄지 알았다”며 “정부가 국민들에게 신뢰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지금은 용서를 하고 화해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을 텐데, 신뢰를 쌓기 위한 노력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이제라도 진심어린 사과와 진상규명이 필요하다는 게 남 교수의 생각이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모든 의혹이 해소되고 철저한 책임규명으로 희생자 가족과 국민들에게 더 큰 상처를 안겨주지 않길 바랄 뿐이다.
남 교수는 유족들의 삭발과 도보행진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세월호의 조속한 선체 인양과 진실규명을 촉구하는 간절함에 그도 참여했다.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그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광주에서 도보행진에 합류했다.
남 교수는 “소중한 자녀들을 가슴에 품은 유족들이 거리로 나서는 일이 없어야 한다”며 “정부는 더 이상 유족들의 몸과 마음을 고생시키지 말고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남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은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예로 들며 “세월호를 바라보는 희생자 가족에게는 부러운 남의 얘기”라고 아쉬워했다.
“생존 가능성도 불분명한 병사 라이언을 구하기 위해 미국 정부가 들이는 유·무형의 비용이 엄청났습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국민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단에 박수를 보냈죠. 하지만 세월호는 경제논리와 정치적 이해관계가 우선시됐습니다. 세월호를 바라보는 희생자 가족과 국민들이 분노하는 이유입니다.”
남 교수는 “국가는 국민 한 사람이라도 재산과 생명을 지켜줘야 한다”며 “세월호 인양은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들더라도 가치 있는 투자이며, 국가가 국민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청주=홍성헌 기자 adhong@kmib.co.kr
[세월호 1년, 갈등을 넘어 치유로-릴레이 인터뷰] ⑤ 단원고 故 남윤철 교사 아버지 남수현 충청대 교수
입력 2015-04-10 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