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성기철] 장충단공원 연설

입력 2015-04-10 02:10

서울 남산 기슭에 있는 장충단공원은 우리의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명성황후가 살해된 을미사변(1895년) 때 순국한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 고종 황제가 1900년 장충단(奬忠壇)이란 사당을 설치한 데서 현재의 이름을 얻었다. 유관순 이준 이한응 사명대사의 동상도 세워져 있다. 요절 가수 배호의 ‘안개 낀 장충단공원’으로 더 잘 알려진 이 공원은 정치 집회장으로 자주 쓰였다.

일본은 1909년 이토 히로부미가 안중근에게 살해되자 이곳에서 국민 추도회를 열도록 했다. 1957년엔 야당이 이승만 독재를 규탄하기 위해 대규모 시국강연회를 열었으나 여당이 동원한 폭력배들에 의해 풍비박산이 났다. 1971년 대통령 선거 때는 김대중과 박정희가 유세 대결을 벌였다. 4·27선거를 목전에 둔 18일 신민당 김대중 후보 유세에 80만명의 인파가 몰려 집권세력을 긴장시켰다. 1만여명은 밤 사이 ‘정권교체 김대중’을 연호하며 광화문까지 행진하기도 했다. 박정희는 25일 같은 장소에서 가진 유세가 기대만큼의 성과를 올리지 못했으나 95만표 차로 승리했다.

김대중의 장충단공원 연설은 파격적인 내용이어서 당시 정치권을 크게 술렁이게 했다. 그는 “이번에 우리가 집권하지 못하면 박정희씨의 영구집권 총통시대가 온다”며 ‘유신시대’를 예언했다. 향토예비군제 폐지, 지방자치제 도입, 부유세 신설을 공약하기도 했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9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시작하면서 김대중의 장충단공원 연설 내용을 인용했다. “이중곡가제와 도로포장, 초등학교 육성회비 폐지 등 내가 한 공약에 모두 690억원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특정 재벌과 결탁해 합법적으로 면제해준 세금만 1200억원입니다. 이런 특권경제를 끝내야 합니다.”

문 대표의 연설은 경제정당 노선을 부각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하지만 정치에서 ‘경제 포퓰리즘’은 경계할 일이다.

성기철 논설위원 kcs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