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만큼 다양한 게 있을까. 할머니 냄새, 엄마 냄새, 새색시의 향긋한 살 냄새, 퀴퀴한 노총각 냄새,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 은은한 커피향, 새큼한 라일락 향기, 코끝을 찌르는 오물 냄새, 고서에서 나는 눅눅한 서향….
나라마다에도 특유의 냄새가 있다. 실로 냄새의 종류는 헤아릴 수조차 없다. 보통사람은 2000가지의 냄새를, 전문가는 1만 가지의 냄새를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아프리카에는 초정밀 후각을 자랑하는 코끼리가 있다. 코끼리를 죽이는 마사이족과 전혀 괴롭히지 않는 캄바족을 먼발치에서 냄새만 맡고서도 정확히 구별할 수 있다고 한다.
사람에게서도 다양한 냄새가 난다. 직업에 따라 환경에 따라 각기 살아온 삶의 내력에 따라 체취가 다르다. 장영희의 수필에는 피자 배달하는 청년이 털어놓은 체험담이 나온다. “피자를 배달하기 위해 현관문을 들어서면 언제나 그 집 특유의 냄새가 있습니다. 집이 크든 작든, 비싼 가구가 있든 없든, 아늑하고 따뜻한 사랑의 냄새가 나는 집이 있는가 하면, 어딘지 냉랭하고 서먹한 냄새가 나는 집이 있습니다.” 장영희는 사람마다 독특한 마음의 냄새를 갖고 있다고 했다
미국에서 개척교회를 시작했을 때 한 백인교회의 채플을 빌려서 더부살이를 했는데, 그 교회의 여성 사무장에게는 인종우월감의 고약한 냄새가 났다. 겉으로 표현은 안 했지만 우리를 깔보는 표정은 쉽게 감지되었다. 또 한 번은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경광등을 깜빡이며 뒤쫓아 오는 경찰차 때문에 차를 세운 적이 있다. 교통법규를 어긴 일이 없기에 의아해 창문을 열어 보니 백인경찰이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이 첫새벽에 왜 교회에서 나오느냐며 거드름을 피우며 물었다. 기도를 마치고 돌아간다고 대답해도 싸늘한 시선으로 저지르는 무언의 폭력만큼은 피할 도리가 없었다. 인종편견에서 나온 역겨운 냄새였다.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하다가 바로 옆에 앉아 열심히 영문원고를 수정하던 어떤 일본인 교수에게서도 묘한 오만의 냄새가 풍겼다. 먼 길 가는 여행이었기에 몇 마디 영어로 물어봤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시큰둥했다. 순간적으로 모욕감을 느꼈고 눈을 감은 채 돌아오는 여행길은 몹시 불쾌했고 지루했다. 같은 일본인이지만 내가 아는 마즈다 선생은 겸손하고 예의가 바른 분이다. 일본인에 대한 편견을 지워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줄 정도로 선생의 인격이 뿜어내는 향내는 진하기 이를 데 없다. 아무개 장로가 무기거래로 부당이익을 챙긴 것도 모자라 교회를 부정한 돈을 세탁하는 창구로 활용했다는 혐의까지 받고 있다. 돈이면 다 된다는 물질만능주의의 악취가 교회 안에서까지 진동하는 것 같다.
냄새에는 전염성이 있다. 담배를 피우지 않아도 흡연가 한 사람으로 인해 담배냄새가 몸에 밴다. 꽃집에서 일하는 사람은 자신이 꽃이 아니더라도 향긋한 꽃향기를 몰고 다닌다. 악취든 향취든 제아무리 냄새를 덮으려고 해도 감출 길이 없다. 사람들은 우리가 말을 안 해도 우리 마음의 냄새를 기막히게 맡아낸다. 심성은 감출 수 없는 까닭이다. 바울 선생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향기’(고후 2:15)라고 했다. 예수의 향기, 목사의 향기, 장로의 향기가 나야 하는데 장사꾼 냄새, 정치꾼 냄새가 난다. 그리스도의 향수를 뿌리며 살아야 함에도 너 죽어라 살충제만 독하게 뿌리고 있으니, 어쩌면 좋을까.
김흥규 목사 (내리교회)
[시온의 소리-김흥규] 마음의 냄새
입력 2015-04-10 0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