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잡히는 책-미친 포로원정대] 포로 수용소 탈출 케냐 산 정상에 오르다

입력 2015-04-10 02:33

이탈리아 식민지청 공무원이었던 저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에티오피아에 파견됐다. 1941년 연합군에 의해 이 지역이 점령되면서 영국령 케냐 제354 포로수용소의 전쟁포로 신세가 됐다. 지루하고 암울한 감옥 생활을 하던 중 철조망 사이로 푸른빛 빙하를 두른 5200m 높이의 케냐 산을 본 순간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그리고 꿈을 꾸게 된다. 수용소를 탈출하여 저 산을 오르고 말겠다는.

황당무계한 이 계획에 포로 동료 두 명이 합류했다. 마침내 ‘미친 포로원정대’가 결성된 것이다. 이들은 반년에 걸쳐 식료품을 비축하고 등반 장비를 손수 제작한 후 수용소를 탈출했다. 표범과 사자와 코뿔소가 언제 덮칠지 모르고, 4m가 넘는 식물들이 걸핏하면 몸을 잡아끌고, 식량은 금세 바닥을 드러내는 등 위험천만한 등정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유머 감각을 잃지 않은 덕분이다.

악전고투를 벌이며 “내가 포로였을 때 말이야”라는 말로 서로를 위로했다. 세 명은 하산 후 수용소에 돌아와 28일간의 감방형을 선고받았다. 케냐 산이 선사하는 장엄한 경관 앞에서 “이 즐거움의 대가가 28일의 감방 수감이라니 믿어지지 않아. 난 56일이라도 기꺼이 있겠어”라고 키득거렸다. 포복절도의 유머 감각과 불굴의 도전 정신으로 산악 논픽션을 기록했다. 꿈과 자유, 이를 이루기 위한 열정을 드라마틱하게 담았다. 윤석영 옮김.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