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사회적 대타협을 정말로 이뤄내려 했다면 하지 말았어야 할 일들이 논의 초반부터 나왔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의 필요성은 절실했지만 전략도, 팀플레이도 없었던 게 문제다.”
8일 대타협 결렬이 선언된 노동시장 구조개선 논의 과정에 대한 노동계 원로의 평가다. 지난해 9월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가 처음 노동시장구조개선특위를 발족시킨 이래 정부의 태도와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는 얘기다. 노사정 논의의 특성상 어떤 이슈도 노사가 합의점을 찾기는 어렵다. 더욱이 이번 대타협 논의 테이블에 올라왔던 통상임금, 근로시간 단축, 정년연장 등 3대 현안이나 임금체계 개편, 비정규직 대책 등의 안건들은 폭발력을 가진 쟁점이었다. 정부가 양측 사이에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균형을 잡으면서도 꼭 필요한 합의점은 반드시 끌어낼 뒷심도 있어야 그나마 조율의 여지가 있는 사항들이라는 게 전문가들 진단이다.
그런데 지난해 11월 정부는 노사정 논의 테이블에 일반해고 요건 가이드라인 등과 같은 ‘뜨거운 감자’를 더 얹어놓았다. 해고 요건 등은 근로자들이 가장 핵심으로 보는 고용 안정성과 직결되는 만큼 노동계가 합의하는 것은 애초부터 쉽지 않다. 여기에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정규직 과보호 때문에 기업이 고용하지 못한다고 한다”며 노동계의 기득권 양보를 요구했다. 본격 협상에 들어가기 전부터 대기업 이익을 옹호하는 답안부터 제시해 협상 축이 이미 기울어 있었다는 노동계의 반론을 사기에 충분한 처사였다. 노동자의 근로조건과 직결되는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을 손질하려 한 것도 끝까지 노사정 대화의 발목을 잡았다. 지나치게 촉박한 시간 내에 결론을 내려다보니 쟁점 사항에 대한 충분한 공감대 형성에 실패했다는 지적도 높다.
일각에서는 노동계가 5대 불가사항 등을 제시하며 지나치게 기득권 보호에 매달려 청년고용 해결 방안, 대·중소기업 상생 방안 등까지 물거품이 됐다는 비판도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날 “논의 과정에서 근로소득 상위 10% 이상 임직원이 임금 인상을 자제해 청년 채용을 확대하는 방안 등에 대한 합의가 있었는데 노동계가 이를 뒤집었다”면서 “기득권 유지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인 것에 실망감을 느낀다”고 비판했다.
문제는 앞으로다. 한국노총은 5대 불가사항에 대해 재계가 전향적 입장을 가지고 올 경우 언제든 대화에 다시 나설 수 있다며 여지를 남긴 상태다. 조만간 노사정위가 특위 전체회의를 열어 최종 입장 조율을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미 지난달 31일부터 계속됐던 노사정 대표자 4인 회동에서도 조율되지 않은 양보안이 이제 와서 나올 가능성은 높지 않다.
결국 그동안 논의 과정에서 정리된 내용을 중심으로 정부가 노동시장 구조개혁안을 추진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 경우 이미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악을 중단하라”며 춘투(春鬪)를 불사하겠다고 버티고 있는 노동계와의 충돌은 불가피하다. 관련 법안이 국회에 제출되더라도 정치권이 적극적으로 나서기 힘들 것이라는 관측도 높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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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4-09 02:21 수정 2015-04-09 09: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