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일본의 정신과의사 노다 마사아키(69)가 쓴 ‘떠나보내는 길 위에서’(펜타그램)가 번역, 출간됐다. 대형 참사를 경험한 유족들의 심리와 치유를 다룬 그 책을 보면서 참사가 반복되는 우리나라에서는 왜 이런 책이 나오지 않는가 안타까웠다. 이번 주 나온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를 받고서 그 안타까움을 씻어낼 수 있었다. 정신과의사 정혜신(52)과 시인 진은영(45)의 대담을 수록한 이 책은 세월호 유족들의 내면에 대한 심층 보고서이자 트라우마(Trauma)에 대한 의학적 설명서, 그리고 치유를 위한 사회적 제안서이기도 하다.
‘슬픔 전문가’로 불리는 노다는 자신의 책에서 유족의 슬픔은 개인적 차원의 심리 처방으로는 치유될 수 없다고 단언한다. 희생자의 죽음의 이유를 사회적 의미로 재창조해야 유족의 슬픔은 극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유족들이 갑작스런 죽음을 받아들이고 충분히 슬픔을 표현하고 극복할 수 있게 사회가 인내하며 도와야 한다고 주장하고, 이 과정을 ‘사회적 상(喪)’이라고 표현했다.
세월호 참사 직후부터 경기도 안산에 머물며 유족들의 심리치유를 담당해온 정혜신의 얘기도 다르지 않다.
“정신과에는 수백 가지의 질환이 있어요… 그런데 유일하게 내인성이 아닌 외인성 질환이 있어요. 그게 바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즉 트라우마예요. 트라우마는 외적 사건이 근본 원인인 병입니다. 개인 내면의 갈등 때문에 생긴 게 아니란 거죠. 그래서 트라우마 치유를 위해서는 근원적 요소인 외부 요인에 대한 명명백백한 정리가 먼저 필요해요. 이 거대한 분노와 억울함의 진원지에 대한 명확한 규명 없이 개인 내면만 치유하면 된다는 건 언어도단이에요.”
정혜신은 2005년 이후 간첩조작사건 피해자들, 광주민주화운동 피해자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 등을 상대로 심리치유 활동을 펼쳐왔다. 트라우마 전문가로 ‘거리의 의사’로 불리기도 한다.
테이블 건너편에 앉아 그에게 묻고 기록한 이는 2008년 ‘창작과비평’ 겨울호에 ‘감각적인 것의 분배’라는 글을 발표해 ‘문학과 정치’ 논쟁을 재점화하고, 이후 정치에 대한 예술의 대응 공간을 맨 앞에서 개척해온 그 진은영이다.
뜨거운 가슴을 가진 두 여자, 정혜신과 진은영은 국가와 정치, 돈 문제 쪽으로 흘러가면서 거대담론화하는 세월호 문제를 유족과 트라우마, 치유, 이웃에 대한 이야기로 돌려놓는다. 책을 읽어가는 동안 종종 눈물이 터져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1년이 지났지만 유족의 아픔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언니를 잃은 한 중학생 아이가 있는데, 어느 날 학교에서 갑자기 선생님 등에 숨었대요. 언니가 자꾸 보인다면서요.”
“어떤 엄마는 자기 아이의 친구가 아이 꿈을 꿨다고 SNS에 쓴 글을 보고는 그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꿈 얘기를 물어봤대요. ‘걔가 어떻게 지내는 것 같니? 춥지는 않은 것 같니?’ 하고요.”
트라우마는 시간이 흐른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걸 이 책은 생생하게 보여준다. 트라우마를 이해한다면 시간이 많이 흘렀음에도 유족들이 계속 고통을 호소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트라우마가 치유돼야 유족들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치유는 시작도 하지 못하고 있다. 치유의 출발점인 진상규명에서 꽉 막혀있기 때문이다. 정혜신은 “진상규명을 위해서 유가족들이 동분서주하는 건 그 자체로 스스로를 치유하려는 몸부림이라는 걸 알아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책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은 치유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정혜신은 치유를 극복이나 완치의 개념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심리적 지원’ 정도로 설명한다.
“트라우마란 그렇게 죽을 때까지 안고 살아야 하는 거죠. 완치가 아니라 상처를 조금이라도 다른 형태로 승화시키거나 다른 세상, 다른 가치를 찾아서 그 안에서 새로운 일상을 구축하면서 견디는 정도인 거예요. 다만 그 상처를 어떻게 견딜지, 그걸 돕는 게 치유인 거죠.”
치유를 이렇게 바라볼 때, 이웃과 공동체의 존재는 중요해진다. ‘좋은 이웃’이라면 누구나 ‘치유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웃 치유자’ ‘사회적 치유’란 개념이 거기서 나왔다. 죽은 아이의 생일파티에 시를 써서 보내주는 시인들, 잠든 유족의 품에 핫팩을 넣어주고 가는 여대생, 안산에 집을 얻어서 생활하며 유족들에게 밥을 지어주는 수녀들, 유족들에게 인기 최고인 마사지 봉사자들 등이 바로 ‘우리 옆집에 사는 천사들’이고 ‘치유자’들이다. 이것은 광장에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것 외에 우리들이 해야 할 일들이 많다는 것을 알려주면서 깊은 무력감에 빠진 이들에게 무언가를 시작할 용기를 준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책과 길-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뜨거운 가슴의 두 女子 세월호 상처 쓰다듬다
입력 2015-04-10 0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