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막을 걷어라 나의 좁은 눈으로 이 세상을 더 보자∼’
최루탄 가루 날리던 캠퍼스의 기억을 가진 한국의 50대들이 노래방에서 자주 흥얼거렸을 이 노래. 한국 포크 록의 전설 한대수(67)의 대표곡을 꼽자면 이 ‘행복의 나라로’(1968)가 아닐까. 그의 데뷔곡이다. 당시 TBC TV에 나와 미친 사람처럼 긴 머리의 사내가 남진의 ‘가슴 아프게’도,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도 아닌 이 노래를 불렀을 때 대중의 반응은 충격 그 자체였다. 첫 앨범 ‘멀고 먼-길’(1974)에도 수록된 이 곡에는 아픈 개인사가 녹아 있다.
그는 부산에서 고교를 다니다 미국 뉴욕으로 전학을 갔다. 유학 간 후 십 수 년 간 행방이 묘연했던 핵물리학자 아버지가 어느 날 그를 불렀기 때문이다. 자본의 도시 뉴욕에서 그는 60년대 초반의 한국의 가난을 뼈저리게 느꼈다. 이국에서의 향수와 ‘잘 사는 내 나라’를 소망하는 소박한 애국심이 녹아 있는 곡이다.
한대수가 노래 인생 40여년을 회고하듯 에세이집 ‘사랑은 사랑, 인생은 인생’(북하우스)을 냈다. 평생 지은 곡의 가사와 함께 얽힌 사연을 써서 인생을 정리하는 독특한 형식이다. ‘가사로 읽는 한대수의 음악과 삶’인 셈이다. 첫 앨범에 수록된 또 다른 대표곡 ‘물 좀 주소!’는 68년 친어머니의 초청으로 귀국했으나 히피적 삶이 용인 받지 못하면서 느끼게 된 분노와 반항의 표출이다.
첫 앨범이 히트를 쳤고, 기자로 취직을 하고, 결혼도 했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을 것 같은 순간에 시련이 왔다. 두 번째 앨범 ‘고무신’이 ‘체제전복적 음악’으로 낙인 찍혀 판매 금지됐다. 다시 미국행을 택했다.
에세이는 앨범 순서를 소제목 삼아 연대기적으로 삶을 회고한다. 한대수는 “내 노래를 하나하나 정리하니 나의 자서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내가 음악을 작곡하는 것이 아니라 곡이 나를 찾아온다”는 그에겐 사회 뉴스 뿐 아니라 골목길 상인들의 외침도 가사가 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의 탄핵정국이 배경에 깔린 ‘대통령’,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침공을 비판한 ‘No Control’ 등 정치적 주제 뿐 아니라 옆집의 부부싸움 등 서민들의 소소한 일상을 가사에 담았다. 첫 아내와의 이별, 두 번째 아내를 만난 기쁨, 그 아내의 알콜 중독 등 가정사는 물론 내밀한 여성 편력까지 때론 당혹스러울 정도로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한대수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것 같다. 사진을 전공한 한대수가 찍은 사진이 같이 수록돼 있어 읽는 맛을 더한다. ‘한대수 악보집’도 부록으로 곁들였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책과 길] 한대수가 풀어놓은 ‘노래 인생 40여년’… 솔직하다, 독특하다
입력 2015-04-10 0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