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생의 작업이란 이런 것일까. 1936년생으로 올해 우리 나이로 여든이 된 노학자가 유치진 평전을 출간했다. 극작은 물론 연출과 비평, 제도, 교육 등에 이르기까지 근현대 연극사에 굵직한 발자국을 남긴 동랑 유치진(1905∼1974)의 첫 평전이다. 책으로는 800페이지, 200자 원고지로는 4100매 분량이다. 지난 4년간 “일요일도 없이, 정월 초하루도 안 쉬고” 집필에 매달렸다고 한다.
유민영(사진) 서울예대 석좌교수는 지난 7일 전화 인터뷰에서 “서울대 국문학과 재학 시절 석사논문으로 ‘동랑 유치진 연구’를 쓴지 50년 만에 평전을 완성했다”면서 “책을 쓰느라 진이 다 빠졌다”고 전했다. 그래도 목소리엔 활기가 느껴졌다.
그 나이에 그 작업을 왜 하냐고, 미쳤다고, 주변에선 다들 말렸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다 못 쓰고 내가 쓰러지면 어떡하나 애를 태웠다”고 했다. 지난해 4월에는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가기도 했다.
‘한국극장사’ ‘한국근대연극사’ ‘한국인물연극사 1·2’ 등을 쓴 그는 한국 연극사 연구의 독보적 학자로 평가받는다. 말년의 그가 필생의 작업으로 유치진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나라 연극사에서 그만한 인물이 없다. 연극사라는 산맥을 놓고 볼 때 최고봉에 유치진이 있다. 그런데도 일제 말엽에 친일 협력 문제로 거의 조명을 받지 못했다. 이걸 그대로 둔다는 건 역사에 죄를 짓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책은 유치진의 출생부터 죽음까지 시간 순으로 따라간다. 친일 문제도 ‘일본 군국주의의 광풍 속에서’라는 독립된 장으로 70페이지 분량에 걸쳐 본격적으로 다룬다. 그의 평가는 “동랑 역시 반강제로 극단 현대극장을 조직, 목적극 두 편과 연출 몇 편을 무대에 올리고 저들의 정책 홍보성 글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분명히 그의 빛나는 연극인생에서 하나의 ‘옥(玉)에 티’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런데 티가 박혔다고 해서 옥이 아닌 것은 아니다”라는 글에 요약돼 있다.
그는 “논란이 될 수도 있지만 나는 학자의 양심을 걸고 썼다”면서 “적어도 친일파라고 하면 춘원처럼 앞장서서 적극적으로 해야 되는데, 이 사람은 자발적으로 한 게 아니다. 이득을 봤다든가 그런 것도 아니고. 창씨개명도 안 했다. 해방 이후 동랑이 우파노선의 민족연극을 주도했기 때문에 그걸 싫어하는 사람들이 그를 친일파로 몰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한국 연극의 아버지 동랑 유치진’(태학사)은 그의 평생에 걸친 한국 연극사 연구의 마지막 페이지처럼 보인다. 올해는 유치진 탄생 11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그는 평전에서 유치진을 실험정신이 강한 사람, 깊은 인생을 그리는 작가로 조명한다. 사실주의 극작가라는 기존의 평가에서 한참 더 나아간 것이다.
“보통 동랑을 사실주의 작가로 알지만 상징주의 등 실험적인 시도를 많이 했다. 또 후반에는 인생의 깊은 면까지 파고들어가는 작업을 했다. 단순히 사실주의 작가가 아니다. 나는 동랑을 인간의 구원 문제, 생태주의 등 깊은 주제를 그리는 작가로 봤다.”
아직도 쓸 책이 남아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있다”고 대답했다.
“두 가지 꼭 써야 될 책이 있다. 한국 연극사 3권 하고, 통일 연극사를 하나 쓰려고 한다. 요즘 연극사 하는 사람이 없어서 나라도 써야 한다. 누군가는 해놔야 되니까. 고속도로를 뚫듯이 내가 길을 뚫어놓으면 후배들이 거기다 꽃도 심고 그러겠지. 그런데 건강에 자신이 없어.”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책과 길] “親日이라는 ‘옥의 티’ 있지만 한국 연극사 최고봉, 제대로 조명해야지요”
입력 2015-04-10 02: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