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묻자 열없는 미소만 돌아왔다. 중년 여성에게 나이를 묻는 건 실례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머뭇거리던 그는 자신의 나이를 에둘러 표현했다.
“외증조할머니가 한국에 왔을 때 나이가 지금 저와 같았다고 하더군요.”
“아, 그렇다면 올해 53세겠네요.”
“그렇죠. 인터뷰 앞두고 공부 많이 하고 오셨나 봐요(웃음).”
그의 이름은 샐리 게일. 미국 감리교 선교사 메리 스크랜턴(1832∼1909)의 증손녀다. 메리 스크랜턴은 53세이던 1885년 아들 윌리엄 스크랜턴(1856∼1922)과 함께 이 땅에 들어와 한국기독교의 기틀을 마련했다. 게일은 스크랜턴 모자(母子)의 한국선교 130주년을 맞아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 초청으로 둘째 딸 필리파 채프만(17)과 함께 지난 3일 내한했다.
이들 모녀는 요즘 기감이 주최하는 각종 기념행사에 참석하며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선조들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유적지들을 방문하고 교계 관계자들을 만나고 있다. 두 사람은 스크랜턴 가문의 정신이 서려 있는 한국 땅을 밟으며 어떤 기분을 느끼고 있을까.
스크랜턴 후손의 이화여대 방문기
8일 게일과 채프만을 만난 곳은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교정이었다. 두 사람은 이날 이화여대를 방문해 채플을 참관하고 최경희 총장 등 학교 관계자들과 오찬을 함께 했다.
이들이 이화여대를 찾은 건 이 학교 설립자가 메리 스크랜턴이기 때문이다. 메리 스크랜턴은 내한 이듬해인 1886년 이화학당(현 이화여고·이화여대)을 세웠다. 그는 여성과 노약자, 가난한 이들을 보듬으면서 우리나라에 복음의 씨앗을 뿌린 대표적인 초기 선교사다. 의사였던 아들 윌리엄 스크랜턴 역시 질병으로 고통 받는 이들을 찾아다니며 의료선교의 사명을 감당했다.
게일은 메리 스크랜턴 서거 100주년이던 2009년 이화여대를 방문한 적이 있었지만 채프만은 처음이었다. 모녀는 채플이 끝나고 오찬 장소로 향하던 도중 한 동상 앞에 멈춰 섰다. ‘이화여자대학교 창설자’라는 문구와 함께 메리 스크랜턴의 상반신을 조각해 놓은 동상이었다.
“이화여대 방문이 처음은 아니지만 이렇게 외증조할머니의 동상을 다시 마주하니 감격스럽습니다. 그가 뿌린 씨앗이 열매를 맺었으니까요. 할머니가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외증조할머니, 외할아버지의 행적이 담긴 사료(史料)가 앞으로 더 많이 발굴되길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게일)
“이화여대 캠퍼스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다워서 놀랐습니다. 환상적입니다(웃음). 언젠가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 학교에 다니고 싶습니다. 이대생 친구도 사귀고 싶고요.”(채프만)
모녀는 한국교계의 환대에 거듭 감사의 뜻을 표시했다. 특히 게일은 스크랜턴 모자의 업적을 담은 국민일보 기사(4월 7일자 33면 참조·‘母子가 함께 한국선교 문 연 스크랜턴’ 연중 시리즈 1회)를 보여주자 반색하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이 신문을 복사해 가도 되느냐”고 물었다. “선물로 드리겠다”고 말하자 조심스럽게 신문을 접어 가방에 넣었다.
게일은 어머니로부터 외증조할머니와 외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성장했다. 그의 어머니가 딸에게 설명한 메리 스크랜턴, 윌리엄 스크랜턴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어머니는 두 분 모두 에너지가 넘쳤다고 했습니다. 특히 외할아버지가 얼마나 헌신적인 분이었는지 자주 설명해 주었어요. 옳은 일을 행할 때는 거침이 없는 분이셨다고 말씀하시곤 했죠.”
대(代)를 잇는 한국사랑
모녀는 지난 6일 서울 마포구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양화진)을 참배했다. 양화진은 77세를 일기로 한국 땅에서 생을 마감한 메리 스크랜턴이 안장된 곳이다. 채프만은 “양화진 방문은 굉장히 뜻깊은 시간이었다. 참배하는 내내 마음이 숙연했다”고 말했다.
“사실 저는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선조들이 한국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잘 몰랐습니다. 하지만 양화진에 가니 실감이 나더군요. 조상이 묻힌 땅에 제가 서 있으니 기분이 묘했습니다.”
모녀는 현재 캐나다 온타리오 주의 작은 도시인 매덕에 살고 있다. 게일의 직업은 매덕의 한 비영리단체 사무총장. 그는 “지역사회에 나눔을 실천하는 단체”라며 “가난한 사람에게는 식사를 제공하고 자가용이 없는 주민에게는 필요할 때 차량을 지원하는 일을 한다”고 소개했다.
채프만은 한국으로 따지면 고등학교 3학년인 12학년이다. 그는 오는 6월 학교를 졸업한다. 채프만은 “이르면 내년 초 한국을 다시 찾아 선교활동에 나설 것”이라고 수줍게 말했다.
“아직 계획이 구체화된 건 아닙니다. 언제부터 한국의 어떤 단체에서 활동을 하게 될지도 막연한 단계입니다. 선조들이 쌓은 업적에 비하면 저의 활동은 미미하겠지요(웃음). 하지만 반드시 한국에서 선교를 하고 싶습니다. 한국을 사랑한 스크랜턴 가문의 일원이니까요.”
모녀는 오는 11일 캐나다로 돌아간다. 게일은 “한국방문을 통해 신앙이 더욱 성숙해진 것 같다. 크리스천이라면 세상에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갖게 됐다”고 말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130년 전 외고조할머니처럼 한국 다시 찾아와 선교봉사 스크랜턴 가문의 한국 사랑 잇겠습니다”
입력 2015-04-09 02: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