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유승민의 ‘진영 파괴 통한 합의의 정치’에 주목한다

입력 2015-04-09 02:55 수정 2015-04-09 18:30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의 8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은 ‘상생의 정치’의 모델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A4용지 16장 분량의 긴 연설을 하면서 야당을 단 한 마디도 비난하지 않았다. 반대로 새정치민주연합의 ‘경제정당론’과 정의당의 ‘미래산업정책’을 칭찬했다. 고성과 삿대질이 사라진 본회의장 모습은 화해와 협력의 정치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새정치연합이 사상 유례없이 여당 교섭단체 대표연설에 환영 논평을 낼 만도 하다.

유 원내대표는 ‘진영의 창조적 파괴를 통한 합의의 정치’를 역설했다. 시의적절한 제안이다. 언젠가부터 우리 정치권은 사사건건 보수와 진보로 편가르기하는 나쁜 습성을 갖게 됐다. 이념에다 계층, 지역, 세대가 뒤엉키면서 국가적, 사회적 갈등은 치유불능 상태에 이르렀다. 정치가 갈등을 해소하기는커녕 오히려 부추기는 모양새다. 유 원내대표는 진영싸움을 중단하자면서 이제 국회가 포퓰리즘 경쟁에서 벗어나 국가 미래를 설계하는 데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정성이 느껴지는 말이다.

새누리당이 기득권 보호 정책 기조에서 탈피할 것을 다짐하면서, 일부 대선 공약의 수정 불가피성을 거론한 것도 평가할 만하다. 유 원내대표는 “10년 전 대한민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양극화 해소를 시대적 과제로 제시한 노무현 대통령의 통찰력을 높이 평가한다”고 했다. 가진 자와 재벌 대기업의 편이 아니라 고통받는 서민 중산층 편에 서겠다고 한 다짐도 울림이 있다. 증세 없는 복지의 허구성, 재벌 개혁의 필요성, 134조5000억원 공약가계부의 실패를 언급한 것도 새누리당의 변화로 비친다.

중요한 것은 각종 발언이 문제제기에 그치지 않고 실천에 옮겨져야 한다는 점이다. 여야 대표와 중진들은 앞서 세금과 복지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대타협 기구 설치를 경쟁적으로 제안했지만 진전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유 원내대표의 연설은 국회에서 공감을 샀지만 박근혜 대통령과 행정부에는 부담이 될 수 있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심지어 김무성 대표와도 갈등을 빚을 수 있는 내용이 들어 있다. 그가 정치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할 경우 괜히 분란만 일으켰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겠다.

어쨌든 새정치연합이 화답할 차례다. 9일엔 문재인 대표의 국회 연설이 예정돼 있다. 당의 간판으로 등장한 이후 두 달 동안 박 대통령과 각을 세우는 데 주력해 온 문 대표가 새로운 모습을 선보일지 주목된다. 지금 야당에 대한 다수 국민의 요구는 정치적으로 대통령을 깎아내리는 것보다 정부와 협력해서 경제와 안보를 튼튼히 해 달라는 것이다. 야권의 가장 유력한 대선 예비후보인 문 대표에 대한 기대는 그 이상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