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기수] 洋診韓治 논란에 대하여

입력 2015-04-09 02:20

양진한치(洋診韓治). 환자 진료 시 병의 원인을 캐는 진단은 양방(洋方·의학)식으로 하고, 치료는 한방(韓方·한의학)식으로 하는 경우를 뜻하는 말이다. 현재 중국과 대만, 일본에서는 가능하지만, 우리나라는 안 되는 상태다.

의사와 한의사가 의료기기 이용 문제를 놓고 연초부터 넉 달째 다투고 있다. 이른바 한의사의 양진한치 허용 논쟁이다. 대한한의사협회는 X선과 초음파만이라도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구하고, 대한의사협회는 턱도 없는 소리 말라며 각을 세우는 형국이다.

한의사협회 측은 ‘밥그릇 늘리기 싸움’이 아니라 민족의학의 과학화와 현대화를 위해 의료기기 사용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또 “한의학정책연구원 설문조사 결과 국민의 88.2%가, 지난 2월 초 한국리서치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 65.7%가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 허가’에 찬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반면 의사협회 측은 “한의학은 학문적 배경과 작용원리가 다르기 때문에 의료기기 사용을 탐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가톨릭의대 재활의학과 김준성 교수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지난 6일 오후 개최한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 관련 공청회’에서 “(한의사들은) 현대의학에 대한 교육, 특히 실습이 부족하다”며 “X선을 찍어도 한방병원에서 제대로 판독할 수 있을지, 오독(誤讀) 등 안전성 문제가 해소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현재로선 두 단체 모두 양보할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두 단체와 시민단체 등이 두루 참여하는 협의체를 만들어 조정해야 한다’ ‘몇 년이 걸리더라도 두 전문가 단체에 일임해야 한다’ ‘정부나 국회에서 해결해야 한다’ 등 여러 의견이 나오고 있으나 다들 탐탁지 않은 표정이다. 해법이 없을까.

흔히 의학을 과학이라 한다. 그러나 옳은 표현이 아니다. 사실 의학은 과학적 연구방법을 도입함으로써 크게 발전한 학문일 뿐이다. 의학을 단지 과학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이유다.

한의학 역시 과학적 연구는 물론 진단검사 의료기기를 진료 시 자유로이 이용하는 방법을 도입하면 오늘날 세계적 반열에 오른 한국 임상의학과 같이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제3 의학으로 도약할 수 있지 않을까. 인체에 초미세 로봇을 넣어 체내 곳곳을 탐지하는 과학문명 시대에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듯 전통 맥진(脈診)법에만 의존해 병인을 캐는 의료행위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선 전제 조건이 있다. 몇 가지 정책적 판단 및 사전 준비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는 의사면허 제도를 지금처럼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등 다원 체제로 계속 유지하든지 아니면 의사협회의 주장처럼 일원화하든지 어느 경우든 똑같이 적용된다.

첫째 한의사들에게 진단 시 X선, 초음파 등 일부 의료기기 이용을 허용하려면 한의대 교육과 수련과정은 물론 국가고시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 국시에 해당 검사 수행 능력을 평가하는 실습문제 또는 시험과목도 추가해야 한다. 아울러 기존 한의사들의 보수교육 역시 강화해야 할 것이다.

둘째 일본처럼 한의학을 의학의 한 전문 분과로 예속시키지 않을 거라면 전통 민족의학으로서의 한의학의 우월적 가치를 존중하면서 국민건강 및 국제경쟁력을 동시에 높일 수 있는 방도를 찾아야 한다. 우리와 비슷한 체제의 대만과 중국이 본보기가 될 수 있다. 우리만 ‘양진한치’의 길을 봉쇄하고, 한의사들에게 옛 방법만으로 살길을 찾으라고 주문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